10월 24일자 본란의 '대통령 기록은 사유물이 아니다'라는 글에서 필자는 대통령 기록이 특정 대학에 넘겨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담당관은 필자에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답을 해왔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 빨리 역대 대통령 기록관이 세워져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정부기록보존소는 내년 초 건국 45년만에 처음으로 대통령 기록을 체계적으로 인수하여 보존하게 된다. 이는 조선왕조에서 태종이 건국 16년만인 1408년 태조실록을 편찬하도록 명하였던 것과 비교할 때 너무 늦은 일이다. 태종이 실록편찬의 준비를 위해 예문관 설치를 명한 것이 1401년이니 이는 건국 9년만이었다.
우리의 경우에도 정부기록보존소가 있지만 건국 21년만인 1969년에 세워졌다. 대통령 기록을 인수할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은 정부 수립 42년만이었다.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지만 기록문화의 선진화를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은 아직도 많다. 우선 정부기록보존소의 정부 내 지위가 너무 낮다. 정부기록보존소는 현재 행정자치부 내에 소속돼 있고 소장의 직급은 2급이다. 외국의 경우 정부기록을 보존하는 기관은 대체로 '청' 수준으로 되어 있고, 책임자는 차관급이다. 우리의 정부기록보존소도 '국립기록관리청'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정부기록보존기관의 지위가 낮으면 낮을수록 문서 이관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각 광역자치단체에 지방기록보존소를 설립해야 한다. 진정한 지방자치는 기록자치로부터 나온다. 현재는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영구문서도 모두 가져다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기록보존소는 중앙 정부의 기록을 주로 보존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기록은 그 지방의 기록보존소에서 보존토록 해야 한다. 지방에서 직접 그 지방의 역사기록을 보존하게 되면, 행정에도 편리하고 지역 주민의 이용에도 편리하다.
또 지방기록보존소가 만들어지면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지방의 기록을 보존하려 하게 되어 더 좋은 기록들이 보존될 수 있고, 이는 지방사 연구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지방사 연구가 활성화하면, 지방의 주민들이 자기 지방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게 되고, 이는 애향심으로 이어져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이미 대전과 경기도에서 지방기록보존소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좋은 제도와 기관들이 만들어진다 해도 결국 기록보존을 책임지는 것은 사람이다. 박물관에 학예연구사, 도서관에 사서가 있듯이 기록보존소에는 아키비스트(archivist·기록연구사)가 있어야 한다. 외국에는 이미 다 있는 제도인데,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도 기록보존소에 학예사와 사서만 있다. 기록보존의 업무는 학예사와 사서가 하는 일과 전혀 다르다.
따라서 공무원 직제에 기록연구사의 직렬을 하루 빨리 만들어서 대학원 수준의 전문교육을 받은 이들이 이 일에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 매일 생산되는 엄청난 기록물 더미 가운데에서 영구기록으로 보존할 것을 추리고, 그 내용을 목록에 요약하여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기록연구사의 업무이다.
그들이 영구기록으로 선별한 자료들은 훗날 역사자료가 된다. 따라서 이는 과거 사관들이 사초(史草)를 만들던 일과 성격이 같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문장 역사 철학에 모두 능한 인재를 선발하여 예문관 사관으로 삼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에 자랑할만한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했다. 우리도 우수한 인재를 기록연구사로 선발하여 훌륭한 기록문화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정부기록보존소와 행정자치부가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
박 찬 승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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