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 김재철(金在哲) 회장의 접견실 벽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거꾸로 걸려있다. 이 이상한 지도에 담긴 사연은 최근 7판이 나온 김 회장의 저서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정상적인 지도에서 한반도는 대륙 끝에 힘겹게 매달린 변방국가이지만, 거꾸로 놓은 지도에서 한반도는 해양을 향해 치솟은 대륙의 돌출부이자, 대륙과 해양의 교차로로 변한다. 이런 지경학(地經學)적 이점을 살려 동북아시아의 중심 비즈니스 국가가 되는 일이 우리의 생존전략이라는 것이 김 회장의 오랜 지론이다.김 회장 같은 이들의 목소리가 모아지고 더해져 정부 정책으로 탄생한 것이 '동북아 중심국가' 또는 '허브(Hub)코리아' 구상이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는 상황들은 과연 우리에게 허브코리아의 신천지를 개척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회의를 갖게 한다.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의 실천 방안의 하나로 마련된 경제특구는 국회 법안 심의과정에서 이해집단의 압력과 국회의원의 로비로 '별다른 혜택도 없고, 어느 곳이나 될 수 있는' 그저 그런 곳이 돼 버렸고, 그 마저도 노조단체의 파업 위협 때문에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물론 경제특구는 출발부터 그 타당성에 이견이 많았다. 외국인들조차 '특구(特區)'보다는 '특국(特國)'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고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특구가 지정되더라도 입주하겠다는 외국기업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에 국회에서 엇갈리는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해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지역구를 특구에 포함시킬 지에 급급했고, 노조는 특구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며 본회의 통과를 앞둔 법안을 힘으로 저지하고 나섰다.
미국, 유럽연합(EU)에 견주는 단일 경제권으로 급성장하는 아시아에서 중심국가를 꿈꾸는 나라는 우리뿐이 아니다. 우리가 내부의 합의마저 이끌어 내지 못하고 헤매는 사이 중국은 이달초 열린 '아세안(ASEAN)+3' 정상회담에서 2010년까지 아세안 국가들과 자유무역지대(FTA)창설에 합의, 경제외교전의 승기를 잡는데 성공했다.
이 회담에서 태국과 싱가포르 등이 우리에게 FTA 체결을 제안했지만, 우리 대표단은 '농업문제때문에 장기적으로나 검토할 사항'이라며 발을 빼야 했다. 이런 자세에 태국의 한 신문은 '한국은 FTA에 역행하는 이상한 나라'라고 조소를 보냈다.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과제이지만 중국과 아세안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된다면 중국 시장에서, 아세안 시장에서 우리의 설 땅은 없다. 그 거대한 블록의 외곽에 홀로 남아 있는 우리가 동북아의 물류중심, 금융중심이 된다는 것은 꿈일 뿐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동북아의 중심국가가 아닌 변방의 외톨이 국가가 되는 것이다.
배 정 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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