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과 도로 등 각종 개발로 백두대간 등 우리의 산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복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발이 끝난 뒤 최대한 원래의 자연 상태로 되돌려 놓는 프랑스 광산의 자연복원 현장을 다녀왔다. /편집자 주
■훼손 흔적 찾아볼 수 없어
지난달 28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100여㎞ 떨어진 상드랑쿠르 노천 광산의 골재 야적장. 세계 최대 시멘트 생산업체인 라파즈사가 연 100만톤의 골재를 생산하는 이곳은 놀랍게도 잘 꾸며진 공원을 연상케 했다. 노랗게 단풍 든 숲과 낙엽 진 산책로, 보트 사이로 오리가 자맥질하는 한가로운 호수. 수년 전만 해도 골재 채취가 한창이던 공사장이었지만 훼손됐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일대 광산개발 허가 면적은 모두 400㏊. 그러나 현재 채광이 이뤄지는 곳은 10㏊에 불과하다. 광산 지질환경 담당자인 클레르 모리스씨는 "동시에 많은 곳을 파헤칠 경우 생태계 훼손과 주민 불편이 커지기 때문에 조금씩 파내고 채굴이 끝난 즉시 복원작업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2㎞ 가량 떨어진 골재 채취 현장에서는 단 2대의 포크레인 만이 작업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소음으로 새들이 놀란다고 해서 중장비의 경보음 장치는 모두 떼어버렸고, 트럭 대신 컨베이어 벨트가 골재를 운반하고 있다고 라파즈사 관계자는 전했다.
채광이 막 끝난 인근의 들판에는 파릇파릇한 풀 사이로 떡갈나무와 오리나무가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떡갈나무 등은 이 지역 대표 수종으로 '원상복구'를 위해 심어진 것. 비탈진 언덕으로 다가서자 인기척을 느낀 물제비 한쌍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모리스씨는 "물제비가 둥지를 틀기 쉽게 대지를 경사지게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채굴현장이 생태계보고로
광산 측이 특히 자랑하는 곳은 둘레 4㎞가량의 인공호수. 2년 전 골재 채취 후 생긴 거대한 웅덩이에 센강의 물을 끌어들여 조성한 근사한 생태공원이다.
'자연을 발견하는 곳'으로 명명된 이 호수 주변에는 습지와 목초지, 삼림 등에서 자라는 희귀식물과 도요새, 왜가리 등 조류들이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인근 마을 주민 데 보르드(64)씨는 "더할 나위 없는 자연학습장"이라며 함께 온 어린 손자들에게 새 이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1946년 개발을 시작한 상드랑쿠르 광산 주변지역은 이 같은 환경 복원 사업 덕에 86년 프랑스 정부에 의해 '생태중요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복원은 커녕 파헤쳐진 채로 방치돼 생태계까지 파괴하는 우리나라 광산과 달리 오히려 식물 200여종과 조류 40여종이 서식하는 '생태계보고'로 변한 것이다.
다음날 찾아간 리옹 남쪽의 발다제르그 석회석 광산 역시 모범적인 친환경사업장. 이 광산은 특히 '보졸레 누보'라는 상표로 유명한 보졸레 지방의 포도 생산지 한 가운데 위치해 있었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광산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
주변 5개 마을 주민들은 지역협의회를 만들어 광산 복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회사측과 만나 개발과 복원 등을 논의한다. 지역협의회 관계자는 "40년 전 광산개발이 시작될 때 일부 주민들이 포도밭에 먼지 피해가 난다며 사업을 반대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광산 진입로와 채굴 현장 주변의 스프링쿨러에서는 수시로 물이 뿜어지고 있었다.
■주민-기업 신뢰관계
수년 전 채굴 도중 광산에서 암모나이트 등 고대 화석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자 주민은 물론 회사까지 나서 "보졸레의 최대 경사"라며 즉각 광산 개발을 중단하고 발굴 작업에 돌입했다. 화석들은 회사 측이 건립한 마을 한가운데의 '레스파스 피에르 폴'이라는 박물관으로 모두 옮겨졌고 발굴 작업이 끝난 뒤에야 채굴은 재개됐다.
지역협의회 관계자는 "박물관 관람 수입은 마을 운영에 커다란 보탬이 되고 있다"며 "회사가 광산의 모든 진행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갈등이라는 단어를 맨 먼저 떠올리게 하는 우리의 기업과 주민 간의 관계와는 사뭇 달랐다.
한편 이 같은 철저한 자연복원에는 환경에 소홀하는 기업에 반드시 불이익을 안기는 프랑스 정부의 역할도 큰 몫을 한다. 라파즈사의 미셀 피카르 환경담당 부사장은 "광산 개발 후 '원래의 자연상태'로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지 않으면 다음 공사의 허가가 나지 않는 등 더 이상 사업이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환경복원녹화기술학회 남상준(南相駿) 이사는 "우리나라에도 예치금 제도 등 광산 복구 관련 규정이 있지만 유명무실해 백두대간 등 대부분의 광산들이 흉측한 모습으로 남아있다"면서 "일부 기업은 아예 채굴이 끝날 시기에 고의 부도를 내 복구의무를 피해가는 등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파리·리옹=강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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