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의결정족수가 미달인 상태에서 법안을 통과시켜 논란이 일어난 국회에서 이번에는 결석 의원을 대신해 투표를 해준 '대리투표' 소동이 빚어졌다.국회는 11일 본회의를 열어 헌정사상 처음으로 47개 법안을 재의결했다. 7, 8일 얼렁뚱땅 법안을 통과시킨 뒤 비난이 거세지자 나흘만에 문제 법안을 다시 처리한 것이다. 박관용(朴寬用) 의장은 인사말에서 "처리된 안건을 재의결한 선례가 없긴 하지만 새로운 표결문화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본회의를 다시 연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날 출석의원 수를 둘러싼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박 의장 취임 후 처음으로 전자투표제를 실시했다. 의석에서 버튼을 누르면 본회의장 옆 대형게시판에 출결은 물론 찬반표시가 그대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박 의장은 "정족수 논란을 불식하고 의원들의 책임의식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라며 앞으로 전자투표제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오히려 버튼만 누르면 되는 맹점을 악용, 자리를 뜬 동료 의원들을 대신해 투표를 하는 추태를 벌였다. 민주당 박상희(朴相熙) 의원은 개의한 지 30분쯤 지나 옆 자리에 앉아 있던 김희선(金希宣) 의원이 자리를 비운 뒤 대리투표를 해주다 국회사무처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박 의원은 "김 의원 투표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줄이려 한 것이지, 투표하지 않았다"고 강변했지만 게시판에는 김 의원이 없는데도 학술원법개정안 등 3건에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나라당 이상배(李相培) 정책위 의장도 자리를 비운 옆 자리의 임인배(林仁培) 의원을 대신해 투표하는 장면이 방청석 등에서 목격됐다.
박 의장측은 "일부 의원들이 몰상식한 행동으로 국회를 희화화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날 본회의는 정족수 미달에 대한 거듭된 논란에도 여전히 80명 이상이 불참, 최대 187명이 출석하는 데 그쳤다. 회의는 출석을 독촉하는 안내방송이 50차례 이상 나간 뒤 예정시간을 25분 넘긴 뒤에야 시작됐다. 산회한 뒤 국회 주변에서는 대리투표를 막기 위해 전자투표기에 지문감식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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