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주민등록번호는 아주 중요하다. 모두에게 번호가 주어져 있고 변경할 수도 없으며 누구에게 쉽게 알려줄 수도 없다.특히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주민등록번호의 활용이 더 커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할 때에도 항상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인터넷 방송을 보거나,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하기 위해서도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는 주민등록번호 대신 외국인등록번호라는 것이 주어진다. 언뜻 보기에는 한국인의 번호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다르다. 외국인등록번호로는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번호를 입력하면 '번호가 틀립니다'라고 뜬다.
그리고 이 때문에 외국인들이 크게 불편했는데 올 초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외국인등록번호와 등록증을 일제히 갱신했다. 나 역시 관리사무소를 찾아 비용을 지불하고 번호를 갱신한 뒤 일반 주민등록증과 비슷하게 생긴 새 등록증을 받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갱신의 이유 중 하나가 "외국인이 충분히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 "마침내… 고생 끝!" 이제 학교 커뮤니티에 가입해 자료도 받고, 그 동안 제한되었던 많은 작업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새 번호를 받아도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처럼 사용할 수 없었다. 계속 '번호가 틀립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아직 제대로 안되지만 곧 될 거라고 믿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내 외국인등록번호는 계속 '틀린 번호'로 남아 있다.
내 친구의 것도 그렇다. 다른 방법이 없는 우리는 아직까지 한국 친구의 주민등록번호를 빌려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외국인 등록'란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 방송사 홈페이지 회원가입란에도 외국인등록란이 따로 있는데 내 번호를 입력하면 '등록번호 자릿수가 맞지 않습니다'라는 얼토당토않은 문구가 뜬다.
그렇다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 실시한 외국인 등록증 갱신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단순히 불법체류자를 걸러내기 위한 작업이었을까. 하지만 불법 체류자가 아닌 나 역시 인터넷 공간에서는 한낱 불법체류자에 지나지 않는다. 'IT강국 코리아'라는 말이 무색하다.
안나 파라돕스카 폴란드인 서울대 국어교육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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