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과 문화적 특질을 연구하는 인류학이 제국주의 침략사와 궤를 같이 해 발전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제시대에 모양새를 갖춘 아시아 인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한국과 대만 학자들이 모여 일제 하 인류학 연구가 식민통치에 어떻게 기여했으며, 광복 후 양국 인류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심층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주최, 일본 도요타 재단 후원으로 14∼16일 서울대 호암회관에서 '일본 식민주의와 동아시아 인류학 포럼' 1차 회의가 열린다.
식민통치와 특정 학문의 연관 관계를 집중 조명하는 것은 인류학은 물론, 학문 전 분야를 통틀어 첫 시도여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포럼 대표인 전경수(全京秀·53)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이번 포럼을 "한국 인류학 정체성 확립을 위한 '뿌리찾기'의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흔히 1950년대를 한국 인류학의 태동기로 보지만 실제로는 일제 강점기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우리 학계는 이런 과거를 애써 외면함으로써 송석하(宋錫夏) 손진태(孫晋泰) 등 한국인 1세대 학자들의 업적마저 내버리는 우를 범했다. 어둡지만 부인할 수 없는 과거를 직시해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포럼에서는 '인류학과 일본 식민주의의 연구사' '일본 식민통치관료와 아카데미즘' 등 8개 분과로 나뉘어 한국과 대만 학자의 논문 18편이 발표된다.
지난해 결성된 포럼 회원에는 식민 인류학 연구의 권위자인 다나카 마사카즈(田中雅一) 등 일본 학자들도 여럿 있지만 이번에는 토론자로만 참여하게 했다. 한국과 대만의 독자적 목소리를 먼저 들어봐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전 교수는 '식민과 전쟁의 일제 인류학'을 주제로 발표한다. 그는 "인류학을 식민통치에 활용한 것은 서양이 먼저이지만 전쟁 수단화한 것은 일본이 앞섰다"면서 "일제가 조선 중국은 물론, 아시아 각 지역 소수 민족들까지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인류학자들을 앞세워 인구 동태와 체질, 혈액형, 희귀광물 등을 조사한 사실을 실례를 들어 소상히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식민지 경험에 대한 평가가 사뭇 다른 한국과 대만 학계의 시각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직은 '내재적 발전론'이 우세한 국내 학계와 달리 대만 학계는 일본 식민통치가 근대화에 기여했음을 적극 인정해왔다. 전 교수는 "양국학자들의 발표를 통해 이런 시각차가 당시 일제의 통치방식 차이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럼은 이번 회의를 시작으로 내년 대만, 2004년 중국 등 매년 아시아 각국을 돌며 논의의 장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전 교수는 "이 포럼을 계기로 각국 인류학계가 교류와 협력을 통해 발전적 미래를 모색하고 그동안 서양 중심이었던 세계 인류학사에 아시아 인류학을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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