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전남 해남군 고천암호에 방조제가 축조되고 저습지가 생겨나면서 인근에 드넓은 갈대밭이 형성됐다. 매년 늦가을 이맘때 가창오리 떼가 날아오기 시작, 11월 하순쯤 20여만 마리가 군무를 보여준다. 철새 중에는 쇠기러기,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를 비롯, 희귀조인 먹황새, 맹금류인 수리도 있다.이곳에서 나고 자란 한 60대 할아버지가 이곳의 철새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화산면 가좌리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김정웅(64)씨는 수년 전부터 이 지역 14㎞에 이르는 갈대 군락을 순찰하며 새와 물고기를 불법 포획하는 밀렵꾼을 단속하고 있다. 지역 환경단체로부터 '고천암호 지킴이'라는 칭호를 얻은 그는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밀렵꾼들이 총을 쏘아대며 철새들을 못살게 굴지는 않는지 걱정"이라며 "아침에 눈만 뜨면 호수로 달려가게 된다"고 했다.
처음엔 호수 주변을 돌아다녀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고, 현장에서 맞닥뜨린 밀렵꾼과 시비가 붙어 위협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최근에도 새벽에 나와 고기를 걷어가는 사람을 잡아 파출소에 넘기기도 했다. 김씨는 "어릴 적 뛰놀던 호수 주변이 오염돼 물고기와 철새가 줄어들고 쓰레기가 널리면서 철새들의 낙원이 훼손되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며 "홀로 광활한 호수를 지키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철새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밀렵이나 오염이 줄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해남=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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