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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충남 아산시 송악면 거산 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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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충남 아산시 송악면 거산 분교

입력
2002.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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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송남초등학교 거산분교. 2교시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마을(4학년)' 18명의 아이들이 왁자지껄 난로 곁으로 모여들었다. 난로 위에 얹어 둔 고구마를 배급받기 위해서다. 고구마는 아이들이 직접 학교 옆 텃밭을 일궈 수확한 것이다. '고구마반장'을 맡은 대희가 나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힌 뒤 하나씩 나눠줬다. 큰 고구마를 받은 아이들의 환호와 작은 고구마를 받은 아이들의 볼멘소리로 교실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담임 최은희(35) 교사는 "대희 성격이 소극적이고 친구들과 잘 안 어울렸는데 고구마반장을 맡고 난 뒤 많이 활달해졌다"고 미소를 지었다.

인근 거산리와 송학리 등 4개 리를 학군으로 둔 거산분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교생 33명(유치원 4명 포함)에 불과한 폐교 대상 학교였다. 30년 전 12학급에 이르던 학교지만 이농과 농촌주민 고령화로 취학아동이 격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인근 도시지역에서 무려 96명의 아이들이 전학을 왔고, 입학 대기자도 상당수에 이르게 됐다.

그 배경에는 "학교를 이대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는 주민과 교사, 학부모들의 굳은 결의가 있었다. 주민들이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폐교 반대운동을 벌였고 공교육 체제 내에서 새로운 대안찾기에 나선 초·중등교사 연구 모임인 '한국글쓰기연구회' 아산·천안지역 교사들이 발벗고 나선 것. 교사들은 연구회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해온 지역 학부모를 중심으로 전학보내기 운동을 시작했다. 일부 학부모는 거산리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이사까지 감행하며 아이들을 전학시켰다. 교사 7명도 거산분교 전출을 자원했다. 분교장 김영주(40) 교사는 "이렇게 모인 학부모들과 7차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재량이 허락하는 한 학습 내용과 방식을 새롭게 바꿔보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거산분교는 '전원형 작은 공동체학교'를 지향한다. 꼭두새벽 집을 나서 콩나물 교실 수업을 마친 뒤 학원을 전전하며 하루를 보내는 도회지 아이들과 달리 이 곳의 아이들은 늘 흙을 밟고 만지며 공부한다. 학교 인근 야산이나 냇가, 농장 등이 모두 교실. 전교생이 뒤뜰에서 야영하며 별자리 관찰도 하고, 추수철에는 인근 논·밭의 허수아비도 아이들이 만들어 세웠다. 냉이를 캐서 된장국을 끓여 먹고, 전통염료 공부 땐 아이들이 직접 티셔츠에 염색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체험학습은 교실로 이어져 '말하기·듣기' 발표수업과 '글쓰기'의 체험 소재가 된다.

이 날 2교시, '산마을(5학년)' 시간표는 '말하기·듣기'시간이었는데 교실이 텅 비어 있었다. 첫 눈이 내리자 새색시 담임선생님(이정림·27)이 14명의 아이들과 교실을 나서 마을 앞 산으로 겨울 산 체험을 나선 것. 왕복 1시간30분이 걸린 산행 후 '글쓰기' 수업을 했다. '… 우리는 남자와 여자편으로 나뉘어 눈싸움을 했다. 선생님을 공격, 선생님이 불쌍하신 것 같았지만 재미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꿩이 날아갔다…교실에 와서 고구마를 먹었다. 너무 재밌었다!'(병철이의 글).

거산분교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식구가 적다 보니 교사들이 전교생의 성격이나 장기 등을 꿰고 있어 특성화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금요일 저녁마다 반별로 친구네 집에 가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는 '모둠생활'은 학부모들간의 벽을 허물었다. 또 전교생이 매주 한 차례 모여 단체생활의 규칙을 반성하고 의논하는 '다모임 학습'을 갖는다.

1년 가까이 부대끼는 동안 교사와 학부모간 믿음도 더욱 두터워졌다. 친지들끼리 소문이 퍼지면서 경기 안성에서 이사를 온 아이도 있고, 내년에 아이를 전학시킬 테니 받아달라며 예약한 학부모들도 상당수다.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표정에서도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등·하교에 각각 1시간 가까이 걸리고, 그만큼 늦잠도 못 자지만 아이들은 이 학교가 좋다고 합창을 했다. 곤충을 좋아하는 3학년 동영이(천안 심방동 두레아파트)는 "먼저 다니던 학교에는 달팽이나 벌 밖에 없는데 여기는 메뚜기도 많고 며칠 전에는 도마뱀도 잡았다"고 자랑했다. 이번 학기에 전학왔다는 3학년 지혜도 "지난해에는 한 반 친구가 50명이 넘고, 다른 반 아이들 이름도 몰랐는데 여기는 우리 반 친구도 적고, 동생 언니 오빠들까지 모두 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떠난 뒤 교무실에서 교사회의가 열렸다. 이날 안건은 12월11∼14일 치를 겨울체험학습 프로그램을 확정하는 일. 겨울학습 테마는 '겨울놀이·음식만들기'로 정했다. 학년별로 얼음썰매와 팽이치기, 활쏘기, 널뛰기, 제기차기 등 프로그램별 담당교사를 정한 뒤 짚풀 인형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한 교사가 바로 마을 이장께 전화해서 짚을 좀 얻어 달라고 부탁했다. 궂은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개구쟁이들에게 농장과 과수원을 체험학습장으로 선뜻 내주기도 하고, 때로는 겨울 벌통관리나 새끼꼬기 등 일일 시범교사로 나서기도 한다. 거산리 이장 이성영씨는 "학교가 있어야 사람들이 살고, 마을도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학교에 아이들이 늘어난 뒤 마을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8월 1학기 종무식이 끝난 뒤 학부모들은 선생님들을 업고 교실을 돌았다. 반신반의하며 아이를 맡겼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밝고 건강하게 보살펴 준 게 고마워서였다. 이 같은 마음들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진 듯 4학년 최은희 교사는 "말썽쟁이 녀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전학 보낸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달 남짓 지나면 2학기 종무식. 한 교사는 "이번에는 우리 차롄데 업어드릴 학부모님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며 활짝 웃었다.

/아산=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최흥수기자

● 거산분교의 고민

송남초등학교 거산분교는 대안학교와는 다르다. 제도교육의 틀 내에서 농어촌의 작은 학교가 존립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실험의 장이다. 그래서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거산분교는 1992년 분교로 격하된 뒤 시설투자 등 교육당국의 지원이 사실상 중단됐다. 전교생이 함께 토론하는 '다모임 학습' 시간에는 100여명이 15평 남짓 되는 교실에 모여 앉아야 하고, 방과후 수업때는 급식실 식탁을 치워야 한다. 교무실은 컴퓨터실을 겸하고 있고, 양호실이나 과학실험실 도서실 미술실 다목적실 등 기본적인 학습공간도 없다. 10년 동안 방치되다 보니 교실 조명도 어둡다. 분교여서 학사일정이나 교육 프로그램 등도 일일이 본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때로는 거산분교의 취지가 본교의 오해를 사기도 하고, 교육청의 곱지않은 시선 때문에 난처한 일을 겪기도 한다. 좋아서 나선 일이지만 교사들의 업무도 힘에 부친다. 과학 음악 미술 등 전담교사가 없어 담임교사가 도맡아야 하고, 교무실 전화를 받아줄 행정서기도 없다. 통학버스 지원이 안돼 학부모들이 월 6만원씩 내 전세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교육당국은 거산분교를 선뜻 본교로 승격시켜 시설 확충 등 재정지원을 해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벽지 학교 통·폐합 시책에 어긋나는 데다, 2∼3년 뒤에도 현재 수준의 아이들이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

학부모회 대표 고경호씨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우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교육당국의 의무"라며 "당국의 고충은 알지만 자발적으로 와서 배우려는 아이들이 있는 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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