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11월11일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42세로 작고했다. 키에르케고르는 흔히 '불안의 철학자'로 불린다. 야콥 뵈메나 블레즈 파스칼, 프리드리히 셸링 같은 철학자들이 단편적으로 탐구했던 '불안'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분석해 이것을 인간의 기본 상태로 설정한 사람이 키에르케고르이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생각에 따르면 불안은 죄에 대응하는 심리적 기분이다. 불안과 죄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불러일으키는 피드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불안의 교화(敎化)를 받아 신앙에 귀의할 수 있고, 신앙 속의 화해를 통해 비로소 안식을 얻을 수 있다. 불안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탐구는 뒷날 마르틴 하이데거, 카를 야스퍼스, 장폴 사르트르 등을 통해 더 다듬어졌다.불안과 함께 키에르케고르 철학을 떠받치는 개념은 절망이다. 자기 상실로서의 절망은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얻었다. 불안과 절망 속에 놓인 개인들의 주체적 진리 탐구라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공안은 그의 생체험과도 깊은 관계가 있었다. 청년 시절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본디 사생아였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소년 시절에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하느님을 저주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키에르케고르 자신이 '대지진'이라고 부른 이 사건 뒤, 그는 죄의식을 내면화했다. 이 죄의식은 10세 연하의 약혼녀 레기네 올센과의 파혼으로 이어지며 키에르케고르를 내적 망명 상태로 몰았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은 뒤 반세기가 지나도록 덴마크 바깥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덴마크어로 저술을 했다는 사실과도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현대철학에서 중요한 이름이 된 것은 20세기 초 그의 저작들이 독일어로 번역되면서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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