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품 경매에서 가장 비쌌던 작품은 고흐의 그림이다. '의사 가셰의 초상'(낙찰가 1,070억원)이라는 이 그림의 주인공은 고흐를 치료해 주던 의사다. 고뇌와 정신착란에 사로잡혔던 고흐의 그림은 3, 6위도 차지하고 있다. 반면 2위는 르누아르의 젊음과 기쁨이 넘치는 무도회 그림 '갈레트 물랭'이고, 4위는 세잔의 정물화다. 모두 인상주의에 철저했거나 거쳐간 화가들이다. 인상파 그림은 경매시장에서 보물이 되어 있다. 나머지 10위까지는 피카소의 그림이 다 차지하고 있으니, 그의 인기 또한 짐작할 만하다.■ 뉴욕에 미술품 경매계절이 돌아왔다. 뉴욕타임스가 10월 31일자 1면에서 경매예고 기사를 다룬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미술과 불안-가을 경매에 드리워진 불경기의 그림자'라는 제목은 우울하기만 했다. 가장 먼저 시작된 4일의 필립스 경매 결과는 참담했다. 피카소의 초상화와 모네의 풍경화 등 44점이 나왔으나 19점만 팔렸다. 전체 낙찰가도 700만달러로 최저 낙찰 예정가의 7분의 1에 머물렀다. 불경기에는 매물이 많지만 사는 사람은 드물다.
■ 지난 97년 IMF 체제의 한파가 닥쳤을 때 우리 미술계도 참담했다. 화랑 폐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급 식당을 겸업한 화랑들도 있었다. 미술품 거래가 끊기니 우아한 화랑공간에서 요식업을 시작했다. 때문에 직업이 선망받는 화랑 큐레이터에서 레스토랑 지배인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가 회복됐다고는 해도 미술계 풍경은 한동안 쓸쓸했다. 전에는 빈번하던 세계적 유명작가의 전시회를 보기 힘들고, 실험적인 작가의 의욕적 전시회도 만나기 어려웠다.
■ 다행히 오랜 동면기를 지낸 서울 인사동이 근래 옛 활기를 회복해 가고 있다. 인사동을 떠났던 주요 화랑들이 그곳에 미술관련 회사를 세우고, 또 낡은 건물을 헐고 새 화랑을 짓고 있다. 그동안 21세기의 도래를 알린 정부의 '새로운 문화의 세기'라는 외침은 한낱 허언이었다. 목소리는 높았지만 문화에 대한 열정은 낮았다. 문화에 봄이 오게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인과 시민의 몫이다. 문화 동면기가 가르쳐 준 교훈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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