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독일정신사를 언급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보리수 길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보리수 길, 린덴 가에 위치한 출판사 주어캄프가 그것이다. 독일 최대 인문학 격납고인 이 출판사의 대표이며 살아있는 마지막 중세인이었던 출판인 지그프리드 운젤트가 78세를 일기로 지난주 심장병으로 타계했다. 이 도시 중앙묘지에서 거행된 장례식엔 총리를 비롯한 독일 문화계 인사 800여명이 전후 독일정신사의 마지막 족장인 이 견실한 거인에게 작별 헌화를 했다.작가 아돌프 뮤슈는 그를 "불가능한 두 개의 대극을 한 육체 안에 통일시켜 간직했던 거인"으로 추모했다. 두 개의 대극이란 불확실성과 부동성이다. 추상적 재화인 지식과 예술이라는 운명적 불확실성을 부동의 신념으로 육화시켜낸 것, 그것이 운젤트에겐 출판이었다. 운젤트는 생전에 "출판이란 책을 낳는 것이 아니라 저자를 낳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의 신화는 그가 자신의 출판사 저자들에게 견실한 족장이고 부친이며 동반자였던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특히 작가나 저자가 침체기에 빠졌을 때 그들에 대한 정신적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아 수많은 일화와 미담을 남겼다. 내 은사이며 주어캄프 저자인 소설가 한스 울리히 트라이헬 교수는 운젤트가 전후 독일정신사의 동력이 된 힘은 무서운 두가지 미덕 즉 '기다림'과 '경청'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런 거인과 함께 자신들의 정신적 작업을 수행해냈던 브레히트, 헤세, 베케트, 아도르노, 블로흐, 하버마스, 한트케 등 독일정신사의 별들은 행복해 보인다. 특히 헤세는 이 출판사에 부를 안겨 준 황금알이었고, 운젤트를 창업자인 페터 주어캄프에게 소개한 장본인이었으며 운젤트는 박사과정중 바로 그 헤세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었다. 분단시절 반입과 소지가 금지된 주어캄프의 책들은 동독 지식인들의 코트 속에 숨겨져 신성한 정신적 식량으로서 비밀리에 운반되곤 했었다. 독일 문화계가 이 한 족장의 퇴장을 그토록 아쉬워하는 것은 이제 다시는 그런 탁월한 출판인을 가질 수 없다는 분명한 예감 때문이다.
한편 독실 감방에서 자신의 잠옷으로 목을 매 자살한, 통일독일 속의 난파자인 구동독 출신의 젊은 애인에 대한 진혼곡인 소설 '그래서 우리는 다르다'의 작가 야나시몬(30)은 요즘 모스크바, 런던 등 국제적 낭독회에 초대돼 통일독일의 증인 역할을 하고 있다. 어젯밤 그녀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그녀는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닌 죽은 애인에 대한 비극적 보고서라고 말한다.
그녀는 요즘 이곳 콘스탄틴 영화사와 계약하고 동명 영화의 대본을 집필하고 있다. 통일독일 속에서 더 이상 구동독인이 아닌 신인류(新人類)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다 추락한 통일문학의 최초의 이카로스인 이 남자의 단명한 삶이 독서계의 지속적인 화제를 제공하며 독일통일 뒤켠의 물기를 만지게 하고 있다.
/강 유 일 소설가·라이프치히 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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