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학년도 수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이 '패닉'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교육당국과 사설입시기관의 가채점 결과 수능 평균점수가 지난해보다 하락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재수생이 초강세일 것이라는 '어두운' 소식이 이들의 동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7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가채점 결과를 접하고 '나만 망친 게 아니구나'라며 안도했던 고3생들은 8일 천차만별인 입시기관들의 가채점 결과가 나오자 "학교도, 입시학원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 일부 재학생들은 "재수생 성적이 20∼30점 올라갔다고 하니, 우리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당황해 하기도 했다.
■'재학생 약세, 재수생 강세'는 왜?
재수생 초강세 현상에 대해 여기저기서 '재학생의 학력저하'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일선교사와 교육전문가들은 공교육 부실 맹목적인 사교육 의존 재학생에게 불리한 수능체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청담고 이상기(李相起) 진학부장은 "재학생 약세는 교육당국의 입시정책과 고교교육 현실이 여전히 어긋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수능 출제경향이 갈수록 통합교과 중심으로 사고력, 분석력 등을 요구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나,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한줄 세우기식' 입시교육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 3학년 이모(18)군은 "재수생들은 우리보다 모의고사 등 실전경험이 많은 데다 수시모집이나 내신관리에 신경쓰지 않고 수능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벌써부터 재수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 K고의 한 교사는 "올초 출제당국이 시험을 쉽게 내겠다고 발표, 일선 학교와 재학생이 이를 지나치게 믿고 쉬운 문제에 길들인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현 수능체제 대수술 필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가채점 방식에 대한 비난도 들끓고 있다. 8일 공개된 주요 입시기관들의 가채점 결과가 제각각이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데다, 평가원이 이들 입시기관보다 표본집단을 적게 해 역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교사들은 "12년 공부한 내용을 하루에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면서 현행 수능시험체제의 대수술을 요구하기도 했다.
충주여고 임근수(林根洙) 교사는 "평가원이 이왕 가채점을 하려면 표본집단을 충분히 해 신뢰성을 높였어야 했다"며 "오히려 혼란을 더욱 부채질한 꼴만 됐다"고 말했다. 부산 용인고 박만제(朴萬濟) 교사는 "나 자신도 진학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캄캄하다"면서 "일부 상위권 학생들은 서울로 논술·면접 과외를 하러 가자는 등 지방 고교의 분위기가 더욱 험악하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윤종건(尹鍾健·교육학) 교수는 "수능을 국가가 관리하는 이상 매년 온 국민이 난리를 치는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수능 출제·관리를 민간에 넘기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반영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면 매년 반복되는 '수능 후유증'도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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