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명(沈相明) 법무부장관,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의 구도가 나오기까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고심은 적지 않았다. 김정길(金正吉) 전 장관과 이명재(李明載) 전 검찰총장이 4일 사퇴한 이후 후임 인선에 나흘이나 걸린 데는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적의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가급적 결격사유가 적은 차선의 선택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청와대가 인선과정에서 고려한 사항은 대선 중립성, 검찰조직의 안정성, 현 정부와의 정서적 일체감 등이었다. 중립성은 현 대선국면에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김 신임 총장이 서울지검장 시절 정현준 사건의 축소수사 논란에 연루된 약점이 있었음에도 발탁된 데는 충남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지역적 측면에서 한나라당, 민주당 등 각 정파의 시비를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심 장관은 호남 출신이지만 정치적 색채가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 감안됐다. 박선숙(朴仙淑) 대변인이 8일 인선 발표를 하면서 "지역성을 고려했다"고 밝힐 정도로 지역적 중립성은 중요한 검토사항이었다.
지역성 고려는 김 총장의 사시 12회 동기인 김승규(金昇圭·전남) 부산고검장의 역차별로 나타났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 고검장도 유력 후보였지만 호남출신 총장으로 야기될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조직의 안정성도 청와대가 막판까지 고민을 거듭한 대목이었다. 인선 작업 초기에는 피의자 사망사건에 대한 문책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외부에서 총장을 기용하자는 '재야(在野)론'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 "이명재 전 총장에 이어 이번에도 외부에서 기용하면 조직 사기가 떨어진다. 재야 출신은 조직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더 존중한다"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아울러 재야의 후보감인 사시 11회의 김경한(金慶漢) 전 서울고검장, 김영철(金永喆) 전 법무연수원장이 모두 TK(대구·경북)출신이라는 사실이 걸림돌이 됐다. 박순용(朴舜用), 이명재 전 총장에 이어 또 다시 TK를 기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이 전 총장이 피의자 사망사건을 매듭짓지 않고 사퇴한 점을 곱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점도 재조(在曹) 발탁의 한 이유였다.
정서적 교감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공식적으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비중을 둔 흔적이 짙다. 김 총장이 현 정부의 핵심세력과 교분이 두텁다는 점이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전 총장 시절 대통령의 두 아들 수사 때 해명조차 전할 수 없었던 상황은 정상적이 아니라고 청와대는 판단하고 있다. 정서적 교감 문제는 대선 이후까지 연관된 것으로, 민감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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