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일자 6면에 게재된 '盧 후보의 개혁성에 대한 의문'이라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시론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관한 자료를 충분히 섭렵하지 못하고 쓴 글로 보인다. 장 교수는 "노 후보의 개혁정책은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부 재벌기업이 개혁에 공개적으로 도전하고 국민 고통의 대가로 이룬 개혁의 성과를 후퇴시키고 있는데도 정치권이 이를 외면하고 있으며 노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고 지적했다.장 교수는 그 예로 "보도내용이 사실이라면 새로운 형태의 관치금융이며 정경유착인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출과 1억달러 해외도피에 대해 노 후보가 원론적인 사실규명을 주장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장 교수는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대북문제와 연계시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해서 노 후보의 침묵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의 지적대로 노 후보가 말로만 개혁을 말하고 반개혁적 현안에 침묵했다면 백번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노 후보는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에 대해서는 TV토론과 강연회 등 수차에 걸쳐 계좌추적을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서둘러 덮어버린 병역비리 의혹을 비롯해 기양건설 공적자금 문제가 흐지부지 되는 현실을 들어 김대중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을 지적한 바 있다. 노 후보가 이런 문제들을 제기한 이유는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덮고 넘어가면 결국 다음 정부에 짐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 후보는 분명히 현대상선 대출에 관해 "계좌추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좌추적의 효율적인 수단은 검찰 수사"라고 제시했다. 장 교수는 이를 "원론적인 언급에 그치고 있다"고 보았으며 "침묵"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노 후보 입장에서 그 이상을 언급하려면 장 교수 말마따나 이런 문제에 대한 언론보도가 사실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즉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자가 언급할 수 있는 범위와 대통령후보가 언급할 수 있는 범위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장 교수가 후한 점수를 주었듯이 노 후보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을 비롯해 재벌의 은행소유 반대, 재벌 2·3세의 편법상속과 증여를 막기 위한 포괄주의 세법을 주장하고 있다. 노 후보의 이러한 정책은 타 후보와 확연히 구별되지만 장 교수가 지적한대로 실천이 문제다. 태생적으로 정경유착과 인연이 깊은 후보들이 재벌개혁을 말하는 것은 까마귀가 백로알을 낳겠다고 공언하는 것과 다름 아닌 것이다.
노 후보는 '희망의 돼지 저금통' 등으로 1인1만원 모금운동을 펼쳐 11월 6일 현재 17억2,000여만원을 모았다. 그리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매일 입출금 내역을 공개할 예정이다. 소액 다수의 깨끗한 돈이 개혁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장 교수가 말하는 개혁의 실천의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 재 성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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