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햇볕정책을 지속하려는 한국 정부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가 미국의 대북 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한 평가를 요구 받은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가 한 말이다.그의 지적대로 공화당이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하게 된 상황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안정의 기본축을 쌓으려는 우리 정부에는 결코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대북 비판에 앞장서온 공화당 매파들의 의회 내 입김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년 1월 시작하는 다음 회기부터는 민주당 조지프 바이든 의원이 맡고 있는 있는 상원 외교위원장직이 공화당 의원에게로 넘겨지는 등 대북 관련 상임위인 외교·정보·군사 위원회의 주도권을 공화당이 쥐게 된다. 물론 제시 헬름스(80·노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벤자민 길먼(79·뉴욕) 하원의원 등 1세대 대북 강경론자들의 퇴진으로 의회 구성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에 일체의 원조 중단을 촉구하는 크리스토퍼 콕스 하원의원이 건재하는 등 공화당 매파들의 뿌리는 여전히 깊고도 넓다.
공화당이 주도권을 장악한 의회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문제 등에 대해 더욱 더 북한을 몰아붙일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의 매파들은 빌 클린턴 정부 때의 유산을 안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과는 대북 정책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달리하고 있다. 이들은 클린턴 정부가 1994년 북한과 제네바 핵 합의를 체결한 것은 북한의 협박에 넘어가 사탕을 준 꼴이라며 줄곧 합의의 폐기 또는 수정을 요구해왔다. 최근 북한의 핵 개발 시인으로 거세지고 있는 대북 강성 기류에 공화당 매파들의 목소리가 보태질 경우 북한과의 전면적인 마찰 국면으로 흐를 가능성이 짙다는 게 한반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선 제네바 핵 합의에 따른 2003년도 대북 중유 공급사업의 예산을 의회가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공화당측은 12일 열리는 레임덕 회기 중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내년도 대외활동예산안 수정안을 통과할 태세다.
또 북한이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 개발을 포기할 때까지는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도 중단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경수로 건설 사업은 유지하는 선에서 북한의 핵 개발 포기를 종용하는 정책을 취하는 우리 정부와의 마찰이 불가피한 부분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했다고 해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면적으로 수정될 것으로 단정하기는 무리다. 부시 정부가 외교적 방법으로 북한 핵 문제를 풀기로 한 이상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강행할 경우 국제 사회의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어 부시 정부와 공화당은 당분간 북한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압박의 수위를 정하는 정책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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