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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사법권과 인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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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사법권과 인권론

입력
2002.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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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인 피의자가 검찰청에서 밤샘 조사를 받던 중 수사관들의 폭행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으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담당검사가 구속되었다. 그러나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번 사건은 '검찰 초유의 사태'도 '경악할 일'도 아니다.그 동안 검찰에서 이러한 종류의 가혹행위가 한번도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혹행위는 이전에도 있었으며, 어떤 종류의 가혹행위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밤샘조사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면 피의자와 참고인들을 검찰청에 소환하여 밤을 새워 조사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밤샘조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인 잠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가혹행위에 해당하지만 이 점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텔레비전에서조차 불 켜진 검찰청사를 보여주며 "밤샘조사가 진행중이다"는 보도를 자연스럽게 하는 실정이다 보니, 검찰로서는 밤샘조사가 가혹행위라는 점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도 밤샘조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수사에 태만하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검사들 가운데에는 저녁 무렵 피의자를 소환하여 밤샘조사를 통해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을, 효과적인 수사기법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밤샘조사를 가혹행위가 아니라 효율적인 수사 방법으로 생각하는 검사들의 인권의식 수준. 이것은 인권교육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법조인 양성 제도에서 비롯된다.

현재 대학의 법학과와 사법연수원의 교육프로그램에는 인권교육에 관한 내용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형식적이고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법조인들은 인권이 무엇인지,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실체 진실의 발견과 범죄자의 인권보호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엄정한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고민을 할 기회도 없이 성적 순서에 따라 검사나 판사로 임용된다. 검사가 되고 난 후에도 인권교육이나 인권을 존중하는 수사기법에 관한 교육을 받을 기회는 거의 없다.

올바른 인권의식은 법률을 외우고 이해하여 시험을 치르는 것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법률에 어떤 규정이 있는 것을 알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인권교육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피의자의 권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검사들이 '죄인 혹은 용의자'라는 이유로 잠을 재우지 않고, 무조건 반말을 쓰고, 욕설을 하고, 필요한 경우 구타를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유치원에서 "신호등을 지켜야 한다" "줄을 서서 차례를 지켜야 한다"고 알려주고 시험을 치른 다음에, 아이들이 다 맞았으니 더 이상 교육은 필요 없다고 하며, 아이들에게 신호등을 지키고, 줄을 서고, 차례를 지키기를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권의식은 법률 이론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는 자세에서 시작되며 이것은 계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습득될 수 있는 것이다. 법률이론만을 가르치는 지금과 같은 법조인 양성제도 아래에서는,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다소의 인권침해가 불가피하다는 의식이 없어질 수 없고, 이러한 의식 하에서는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가 근절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법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의 교육프로그램과 기존 법조인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에 인권교육 강좌를 신설하고 그 내용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인권교육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볼 때 인권 침해적인 수사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 유 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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