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3·4분기 실적 발표가 한창인 요즘, 전세계 투자자와 언론이 최고경영자(CEO)들의 입을 따라가느라 바쁘다. 제너럴일렉트릭·인텔·IBM·지멘스·델컴퓨터의 회장이 앞다퉈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 앞에 직접 나서 세계 경기와 기업실적을 진단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의 어두움 속에서 빛을 찾는 투자자들은 경험과 직관에서 나오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한다.국내 기업도 똑같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지만 어디를 가봐도 한국의 내로라하는 CEO의 얼굴은 찾을 수 없다.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을 상대로 하는 IR(기업설명회)에는 대부분 임원이나 IR담당 팀장들이 나와, 경기에 대한 예리한 진단보다는 실적 부풀리기와 기업 홍보에 바쁘다. 국내 최대기업이라는 삼성전자와 시가총액 상위기업도 마찬가지. 이달 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삼성전자 POSCO KT 한국전력 LG전자 등 한국 대표기업의 합동 해외 IR에도 이들 기업 CEO는 한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팀장이나 부장 본부장들이 거대한 자금을 움직이는 베테랑 외국 기관투자자들 앞에서 "지금이 한국 시장 투자 적기"라고 외칠 뿐이었다.
해외 모터쇼나 신제품 발표회를 가보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회장들이 나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온갖 액션을 섞어가며 새로운 차와 제품을 조목조목 설명하지만, 국내 신제품 발표회장은 이벤트업체의 잔치판일 뿐이다.
국내 기업 CEO들은 언론과의 민감한 인터뷰에는 몸부터 사리고, 투자자와 접촉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늘 일정이 바쁘다거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가 따라붙는다. CEO들이 투자자·고객과의 만남 대신 정부관료나 정치권과의 접촉에 더 많이 신경 쓴다면, 기업과 시장이 외치는 주식 투자 저변확대는 요원하다.
김호섭 경제부 기자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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