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자들과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차갑고 냉소적이다.한나라당의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이 도맡아 해주고 있는데도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3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비록 검찰이 이 후보 큰 아들 정연씨의 병역면제 의혹에 대하여 '혐의 확인 불가'라는 면죄부를 주었으나, 일반 국민은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에 대한 의구심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3김(金)씨의 정치행태를 극복하겠다고 하면서도 세몰이식, 줄세우기식 3김(金)씨의 정치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 회귀적인 냉전적 사고와 친재벌 정책 등은 이 후보가 말하는 '아름다운 원칙'이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하면서 그의 지지율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
민주당의 행태는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은 없다. 특히 최근 민주당 의원들의 명분 없는 집단탈당과 전국구 의원들의 제명 요구 사태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자기 정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도를 깎아 내리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듯 보인다. 이런 일은 세계 어느 정당사에도 없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원칙, 소신, 명분, 솔직함이 경선 이후와 민주당 내분의 와중에 사라져 버렸고 급기야 최근에는 정치적 갈 '지(之)'자 행보까지 보이고 있다.
이틀 전 창당된 '국민통합 21'이라는 신당은 정몽준 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급조된 정당에 불과하다. 정당 구성원의 정체성이나 동질성, 그리고 정치적 비전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정 후보는 한국 축구팀의 월드컵 4강 신화의 인기를 자신의 지지율 기반으로 하는 것 외에는, 그의 삶의 궤적을 통해서나 또는 그가 자랑하는 4선의 국회의원 정치역정을 통해서도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이 별로 없다.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와 정치권에 냉담하고 냉소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구나 국민들의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을 야기한 정치권과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우리 국민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정치가 함량 미달과 내용 불량인 한편의 코미디나 드라마보다 못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정치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가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거나, 감동을 주지 못하면 국민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다.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영역이란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환호를 보낼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결국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도 '그들만의 축제'에 불과하게 될 것이며, 선거결과에 국민 절대 다수가 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평소부터 정치가 국민을 위하고 향하지 않으면, 선거철이라고 해서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질 리 만무하다. 정치가 국민을 배반하면, 국민은 정치를 경멸하게 마련이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정치다'라는 말이 있다. 정치로 포괄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정치이기에 정치와 정치인에게는 무한 책임이 뒤따른다. 그래서 일찍이 독일의 유명한 정치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책에서 책임감을 통찰력, 열정과 아울러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들었다. 대통령 후보를 포함한 정치인들은 국민과 국가에 대한 책임감, 시대와 세계와 미래를 읽을 줄 아는 통찰력, 그리고 국민을 감동시킬 줄 아는 열정으로 유권자들의 냉담한 마음을 녹이고 사로 잡아주길 바란다.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의 실패이고, 정치의 실패는 모든 것의 실패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송 병 록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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