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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뺄셈 지향의 입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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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뺄셈 지향의 입시정책

입력
200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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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영양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표범보다 빨리 뛸 필요는 없다. 다른 영양보다 빨리 뛰면 된다." 이 말은 최근에 읽었던 사회생물학 책에 있는 구절이다.우리 입시 경쟁을 보면 수험생들은 아프리카 영양과 처지가 비슷해 보인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희생양을 고르기 위한 것처럼, 소위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시험에 찌든 학생들에게서 창의성과 패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학부모의 고통은 또 어떤가. 학원이다, 가정 학습지다, 과외다, 세계 제1의 입시관련 산업을 위해 고통 속에 높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런 부담의 결과가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밀어내는 제 살 갉아먹기에 불과하다면, 엄청난 교육투자의 효과치고는 너무나 허망하다.

단지 경쟁이 순서만 매기는 기능을 한다면 경쟁의 효과는 사회 전체적으로 의미가 없어진다.

원래 경쟁 원리가 그런 것인가? 사실 경쟁 과정에서 서로 적응력을 길러 전체 종의 생존율이 높아질 때, 경쟁이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아프리카 영양은 경쟁을 통해 빨리 달리게 되어서 표범에게는 지겠지만, 하이에나에게는 잡혀 먹히지 않게 될 수 있다.

우리 입시 경쟁에서 이러한 긍정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이제, 단지 경쟁한다는 그 자체보다는 경쟁의 내용과 효과에 대해서 관심을 쏟아야 한다. 경쟁 자체는 인정하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도록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 과연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태도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입시제도를 만들어야 하겠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현재 우리 입시에서 학교성적, 수학능력시험, 서류전형, 면접 등 여러 평가요소를 통해 반영되는 각종 교과목과 교육적 성취 내용은 너무 잡다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하나도 충분히 심층적이지 못하다. 이는 각 과목에 관련된 사람들의 '과목 이기주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관련 교육자들이 자신의 과목이 소홀히 될까 봐 대학 입시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윤리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목적이 서로 협력하고 공동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 과목 지식을 성적 요소로 입시에 반영시킬 필요는 없다. 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이나, 봉사활동 기록이면 충분하다.

건전한 정서 발달을 위해 중요한 예·체능 과목을 성적이라는 틀에 넣을 필요는 없다. 재미있게 만들어 학생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다른 많은 과목들도 꼭 성적으로 윽박지르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 있는 과목으로 만들 수 있다.

도구 과목인 국어, 수학, 영어라 하더라도, 지식을 위한 지식보다도 실생활에 밀접한 내용을 포함시켜 전반적인 상식을 측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회와 과학 관련 과목 내용들을 여기에 포함시켜 시험을 치른다면, 시험과목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 기본 원리에 해당하지 않는 지식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시 내용을 개선할 필요는 더욱 커진다. 기본적 내용을 제외한 지식들을 과감히 입시 평가 요소에서 배제하고, 기본 원리와 현실 사회에 맞는 내용을 평가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입시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목 이기주의를 과감히 없애야 한다. 폭 넓은 내신 등급제를 통해 학생들이 1, 2점 차이에 민감하게 되지 않도록 하며, 전국적 시험의 경우 과목 수를 과감히 줄이고, 더 평가요소가 필요한 경우 대학에 맡기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물론 대학에서도 잡다한 지식 습득을 강요하는 평가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입시가 전국적 관심사가 되는 세계 유례없는 일을 보면서,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교육 당국자와 동료 교육자의 자기 희생적 결단을 기대해본다.

홍 기 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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