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대다수가 강남권 출신이지만 여기선 자칫하면 촌 사람이라는 소리 듣기 십상입니다." 지난 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선 주부 K(42)씨는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날 친구들과의 수다 모임에서 모처럼 스타가 됐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끝내준다'는 소문을 듣고 집 구경 언제 시켜 주겠냐며 어찌나 성화던지 혼났어요." 그는 '대한민국 1%' '주거문화의 신기원' 등 수식어가 다소 부담스럽지만 그 그룹에 속했다는 사실에 은근히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입주 일주일째. 타워팰리스 200여 세대 주민들은 반경 100여m 폐쇄된 공간 내에서 '그들만의 주거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K씨를 따라 41층(69평형) 아파트에 들어서자 양재천과 구룡산 경관이 너른 거실 창을 통해 다가섰다. 그는 거실 벽에 부착된 '월 패드(홈 오토메이션 네트워킹 단말기)'에 손을 댔다. 택배 아이콘이 깜박깜박. "이틀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아이의 책이 도착했나 봐요." 그 사이 다용도실의 수입산 드럼세탁기는 저 혼자 탈수 소음을 토하고 있었다. 귀가 전 휴대폰 원격 제어로 세탁기를 작동시켜 둔 것. K씨는 월 관리비를 70만∼100만원 정도 예상한다고 했다. "관리비가 좀 부담스럽기는 해도 누리는 비용까지 따져보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죠." 그는 빨래를 넌 뒤 아이(중1)가 귀가하는 오후 5시께까지 30층 체련실(피트니스센터)에 가서 '트래드밀(러닝머신)'을 이용할 생각이라고 했다. "커뮤니티(공용)시설 운영비가 관리비에 포함되니까 충분히 활용해야죠. 곧 무료 아령체조 강좌가 생기면 거기도 등록할 계획입니다."
사흘 전 인근 우성아파트에서 이사를 왔다는 주부 S(50)씨는 지난 밤 반신반의하며 창문하나 없는 보조주방에서 김치찌개를 끓여봤는데 대만족이었다며 뿌듯해 했다. "퇴근한 남편이 저녁 메뉴를 눈치채지 못했어요. 거실에 냄새가 안 났다는 거죠. 먼저 살던 아파트에서는 창문 열고 환기까지 시켜도 어림없던 일입니다." 렌지 후드와 전면 천장의 이중 흡기시스템, 부엌과 거실 경계지점 천장 배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정공기 덕분이다. "창문 열 일이 없어요. 자동 온도·습도조절에 환기까지 되니까요."
그는 집 청소가 가장 편해졌다고 했다. 가구마다 공급된 본체 없는 청소기(호스와 손잡이만으로 구성)를 방마다 설치된 먼지 흡입구에 꽂기만 하면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는 가사 부담이 줄어든 만큼 이웃들과 함께 2층 클럽하우스에서 차도 마시고, 운동도 함께 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사우나 광'이라는 K(51)씨는 퇴근 후 아내와 양재천 산책을 마치고 함께하는 사우나 재미에 아이처럼 들뜬다. "십 수년 전 해외 근무 때 아내와 호텔 사우나를 함께 해 본 적은 있지만 내 집에서 이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흡족해 했다. 그는 내달 수영장이 문을 열면 그곳의 무료 사우나시설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굳이 내 집 전기 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타워팰리스만의 철저한 보안은 또다른 화젯거리다. 주인은 깍듯한 인사를 받지만 손님은 허락된 방문임을 확인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아파트 건물 입구에서 또 한차례 걸러진다. 동 1층 안내데스크에 몇 동 몇 호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현관 문을 열어준다. 방문객이 터치패드 통신단말기로 주인과 직접 통화를 한 뒤 문을 따주기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생소한 기기에 손을 댈 만큼 '간 큰' 방문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관리업체인 타워개발 직원 외에 보안요원 40여명이 교대로 24시간 근무하고, 주요층 복도와 비상계단 주차장, 마당 등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만도 150여 개라고 아파트 관계자는 귀띔했다. C동 안내데스크 관계자는 "불평하는 손님도 있지만 주민들의 요구인 만큼 손님들이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보안도 좋지만 이래서야 가까운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겠느냐"며 '왕따'를 우려했다. 그는 헬스·수영장과 골프연습장 등 시설이나 서비스가 여느 전문업체에 빠지지 않고, 시설운영비가 관리비에 포함되는 만큼 바깥에서 운동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바깥 사람 못 들어오고 단지 주민이 안 나가면 결국 우리끼리 살게 되는 거죠."
입주민 중 상당수는 "여기서 우리는 못사는 축에 들 것"이라고 했다. 아파트 평수의 편차(35∼124평)에 지레 주눅이 든 탓도 있거니와, 실제 다 같은 입주민이 아니다는 느낌도 받는다고 했다. 4년째 SM5를 타고 있다는 50대 한 주부는 "아직 10%도 입주를 안했는데 에쿠우스나 그랜저는 평범한 차종이고 벤츠나 아우디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며 "낮 시간에 주차된 것을 보면 대개 안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차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 집만 해도 어제 1,300만원짜리 이태리산 소파를 들여 놨는데 우리는 이사하면서 장식장(120만원) 하나 바꾼 게 전부"라며 "주위에 잘 사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 아이들 기 죽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69평형을 분양 받은 맞벌이 주부 K씨는 중도금 내는 동안 남편과 자주 다퉜다고 했다. 1회분 1억원에 이르는 중도금 마련도 쉽지 않았던 데다 '분수도 모른 채 큰 돈을 깔고 앉게 만든' 남편이 원망스러웠던 것. 다행히 아파트 시세가 올라 기분이 풀렸다는 그는 "집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시누이와 자그마한 사업을 동업할 구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무섭게 단지 주변 조명이 환하게 밝혀졌다. 두꺼운 코트 차림의 보안요원만 간간이 눈에 띌 뿐 인적조차 드물었다. 초고층 첨단서구형 주거문화의 시험장이라는 부러움과 극소수만을 위한 폐쇄적 생활공간이라는 질시를 한 몸에 받고 선 타워팰리스의 '하드웨어'는 자타공인 합격권이었다. 하지만 주민공동체가 만들어 갈 '소프트웨어'는 두고 볼 일이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타워팰리스 특징
지난 달 25일 입주가 시작된 타워팰리스I은 A,C동(59층)과 B동(66층), D동(42층) 등 4개동(1,297세대·오피스텔 202실)과 3층짜리 상가·스포츠센터동으로 구성돼 있다. 내년 2월과 2004년 5월 타워팰리스II(55층 2개동), III(69층 1개동)이 들어서면, 총 3,070여 세대(오피스텔 포함) 단지 전체가 완성된다.
단지 내에는 대형 슈퍼마켓과 금융기관 병원 등 부대시설이 입주하고, 동별로 수영장과 헬스장, 골프연습장, 휴게시설(바), 당구장, DVD룸, 대형세탁물 시설, 게스트룸, 독서실(동별 28석), 연회장 등이 들어서 '원스탑 리빙시스템'이 가능하다.
타워팰리스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상 세계 최초로 주거공간 '홈 네트워킹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 조명, 세탁, 냉방, 도시가스 설비를, 실내에서는 버튼 하나로 외출시는 휴대폰이나 인터넷으로 제어할 수 있다.
또 전기·수도요금이나 관리비 내역도 매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다.
홈 네트워킹을 통해 단지 내 공동시설 이용 현황을 실시간 체크해 예약·이용할 수 있고, 세대별 통화나 인터넷 자료 전송은 물론이고 인터넷 전화망을 이용하면 국제전화료도 90%가량 저렴하다. 방범모드나 외출모드를 설정해두면 방문객의 얼굴모습과 방문시각 등을 홈 서버에 저장할 수 있고, 비상버튼을 누르면 즉각 보안요원이 출동한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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