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11월5일 프랑스의 유기 화학자 폴 사바티에가 피레네 산맥 근처의 카르카손에서 태어났다. 1941년 몰(歿). 사바티에는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콜레주 드 프랑스의 마르셀렝 베르틀로 밑에서 열화학을 연구해 학위를 받았다. 파리 고등사범학교는 흔히 인문학의 산실로 알려져 있지만, 사바티에나 루이 파스퇴르 같은 위대한 자연과학자들의 모교이기도 하다. 사바티에는 보르도 대학에서 한 해동안 가르친 뒤 툴루즈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30년 퇴직할 때까지 그 곳에 붙박이로 있었다. 그는 툴루즈 대학 재직 중 화학자 앙리 무아상의 후임으로 소르본에 초청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고향에서 멀지 않은 툴루즈에 머물러 피레네 사람들의 자부심이 되었다.사바티에는 1897년 환원니켈을 접촉제로 삼으면 벤젠에 수소를 첨가해 쉽게 시클로헥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일론의 원료로 중요한 시클로헥산은 생고무·수지·유지 등의 용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바티에는 그 뒤 촉매 합성의 거의 전영역과 수백가지 수소화 반응·탈수소화 반응을 계통적으로 연구하며 유기화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1912년 빅토르 그리냐르와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화학자 폴 사바티에와 동시대인으로 신학자 폴 사바티에(1858∼1928)도 유명하다. 남프랑스 생미셸드샤브리야누 출신의 신학자 폴 사바티에는 프로테스탄트 목사로 일하다 건강이 나빠져 사임하고 교회사 연구로 생애 후반을 보냈다. 그는 특히 성(聖)프란체스코 연구로 전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폴 사바티에의 1893년 저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이야기'는 그의 생전에만 40판 이상을 찍었다. 그의 형 오귀스트 사바티에(1839∼1901)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신학부에서 가르친 종교철학자였다.
고 종 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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