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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팔순에 뒤늦은 육아전쟁 신명나요" 윤계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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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팔순에 뒤늦은 육아전쟁 신명나요" 윤계환씨

입력
200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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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의류 대리점을 운영해왔던 윤계환(82)씨는 1996년 본사가 부도나면서 사회생활을 접었다. 은퇴후 한동안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했었다는 그는 지난 해 직장일로 바쁜 첫째 딸 부부의 어린자녀를 키우면서 육아의 즐거움을 발견, 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육아정보를 찾고 실행하는데 신명을 내고 있다.

생후 6개월 무렵부터 할아버지 품에서 자란 외손녀(2)는 지금은 뛰다 못해 날아 다닌다. 동그랗고 큰 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보송보송한 살결을 볼 때 마다 나는 가슴이 뿌듯하다. 날 때부터 태열(신생아 아토피)이 있던 아이는 자라면서도 줄곧 빨갛게 달아오른 양 볼과 다리를 연신 긁어대며 고생해 주변을 안스럽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얼굴이 뽀얗게 피었다. 이 모든 것이 인터넷을 통해 구한 육아정보의 힘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배움의 힘이 크게 느껴진다.

96년 막상 사회생활을 접고나니 허전한 게 마음고생이 심했다. 체중도 많이 줄고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았다. 두 딸을 다 출가시켜 덩그런 아파트에 집사람과 단 둘이 있으니 쓸쓸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러던 중 2000년 9월, 미국 워싱턴에 살던 첫째딸이 둘째 아이를 낳는다길래 40일 정도 미국서 머물렀다. 출산으로 경황이 없는 딸 부부를 대신해 첫째 손자와 놀아주고 함께 뛰다보니 건강이 하루하루 좋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손자 손녀와 함께 하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이듬해 7월 첫 딸 부부는 귀국하면서 함께 살자고 제의해왔다. 내 건강을 염려한 사위의 배려였다. 고마운 마음에 육아는 내가 맡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나의 인터넷 육아전쟁이 시작됐다. 인터넷은 은퇴후 적적하던 차에 잘 아는 친구가 "인터넷을 배우면 온라인 고스톱도 재미있게 칠 수 있고, 컴퓨터만 있으면 공짜로 국제전화도 할 수 있다"는 소리를 하기에 솔깃해서 동네 노인센터의 컴퓨터 강의를 통해 배웠다. 미국에 있는 손자와 딸들과 마음껏 국제전화를 할 수 있다는 욕심에 용기를 낸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국제전화를 하려면 헤드셋 마이크도 필요하고 초고속망 정도의 빠른 인터넷 망도 필요한데 그런 건 아예 개념도 없었던 셈이니 우습기 짝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둘째 손녀를 위해 아토피 관련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사실상 태어날 때부터 내가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며 알뜰살뜰 보살핀 손녀라 아토피로 고생하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아토피 관련 사이트는 죄다 뒤졌고 먹이면 좋다는 온갖 자연식품에 대한 정보도 샅샅이 모아 딸아이에게 주었다. 덕분에 지금 손녀는 피부미인 소리를 들어도 좋을 만큼 나아졌고, 집에서 만들어 먹이는 것이 제일 맛있다며 패스트푸드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마마파파'나 '베베타운' 등도 내가 자주 이용하는 육아 사이트다. 아이들의 습성에 관한 것부터 야단치는 방법, 책 읽어주는 법, 조기 영어교육 방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보가 수록돼 있다. 요즘에는 첫째 손주를 위해 영재교육 관련 정보들을 열심히 모으는 중이다.

인터넷을 통해 육아정보를 찾아 실행하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면서 내 딸들을 키울 때와는 또다른 재미와 사랑을 느낀다. 삶의 활력도 덩달아 생기는 것 같다. 남들은 노년에 아이 키운다고 하면 "놀러나 다니지, 왜 사서 고생이냐"고도 한다. 그러나 내게 육아는 젊어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는 기회이면서 인터넷이라는 커다란 세상을 만나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노년의 삶에 자라나는 새싹을 키우는 것처럼 의미있는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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