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사표를 제출한 김정길(金正吉·사진) 법무장관은 '국민의 정부'에서 가장 굴곡 깊은 여정을 밟은 장관으로 기록될 듯하다.두 차례나 법무장관으로 기용될 정도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신임을 받았으나 인권을 최우선했던 국민의 정부에 사상 초유의 '고문치사'사건이라는 오점을 남기고 사표를 낸 기구한 상황에 처한 것.
김 장관은 1999년 6월 장관에 임명돼 옷로비 사건 등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으나 2년여간 무난히 장관의 길을 걸었다. 김 장관은 2001년 5월 옷을 벗었다. 검찰에 같은 호남 출신인 신승남(愼承男) 총장 체제를 구축하려는 정권의 의도에 따라 장관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이 법조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김 장관은 올해 김홍걸(金弘傑)·김홍업(金弘業)씨 비리 사건의 후유증으로 송정호(宋正鎬)장관이 7월 6개월만에 물러나면서 전격적으로 장관에 재임명이 됐다. 예상치 못한 1년2개월만의 화려한 복귀였다. 대선 6개월 여를 남기고 후임 장관 인선이 여의치 않자 김 대통령이 믿고 일을 맡길수 있는 김 장관을 다시 불렀다는 것이 해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김 장관은 취임 직후 검찰인사에서 병풍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박영관(朴榮琯) 서울지검 특수1부장을 유임시키면서 한나라당이 해임안을 제출하는 등 병풍사건으로 내내 곤욕을 겪다 뜻하지 않은 고문사건으로 4개월여만에 낙마했다. 김 장관은 두차례의 장관 재임기간 동안 특히 인권문제와 재소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교정행정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그의 불명예 퇴장은 더욱 역설적이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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