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30대 후반 회사원입니다. 아내와 부모님의 갈등이 심해 제가 무척 어려운 처지입니다. 아내의 불만은 부모님 때문에 자녀교육에 지장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초등생 두 아이의 교육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계시니 친지들 방문이 잦고,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님 때문에 집안 분위기도 늘 어수선하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 끼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박씨가)
답/선생의 고민은 외아들이나 큰아들인 현대 한국 중년남성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한 집에서 가부장적 전통사상에 젖은 부모세대와 민주교육을 받고 핵가족을 선호하는 아내 사이에 치어 사는 불쌍한 남성상(男性像)입니다.
사태해결은 분가(分家)이며, 이에는 돈과 선생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문맥으로 보면 선생부부가 부모 집에 들어와 살면서 가족 전체 생활비를 감당하고, 부모는 일하는 며느리 대신 손자들을 돌보아주시는 것 같군요. 노부모가 아들에게 얹혀 사실 때는 주인인 아들 입장을 고려해서 술도 조심하고 다른 친척들도 어려워 전화는 자주 할 망정 방문은 뜸 한데,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이고도 노골적인 애증과 소유관계가 지배하는 부모 자식 관계와 달리, 조부모와 손자 사이에는 순수한 사랑이 오가기에 삼대 동거가 지금까지는 어린 손자들 정서함양에 좋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등학생도 고학년이 되면 갑자기 학과가 어려워져 어머니 보살핌이 더 필요하게 됩니다. 아마 지금이 그럴 시기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선생 부인 입장에서는 일에 지치고, 돈 벌어와도 살림에 다 쓰게돼 보람을 덜 느낄 것이며, 애들은 말을 잘 듣지않고, 집안 주도권은 시어머니에게 가 있고, 남편은 '물렁한 마마보이'로만 처신하니 원망이 생기겠지요. 부모님이나 선생 어느 쪽이든 조금 여유가 있으시다면 분가를 의논해 보십시오. 집을 서로 줄여 두 집으로 나누되 부모님을 인근에 사시게 하면서 생활비를 좀 도와드리는 방향이 어떨까요?
괴롭겠지만 '불효자' 낙인이 찍혀도 개의치 않는다는 각오로 당당히 부모님과 의논하시는 모습을 보이면 아내도 고맙고 미안해 분가이후에도 시부모님께 잘 해드릴 것입니다. 부모가 더 노쇠하시면 그때 다시 모셔도 될 것입니다. 이제 진정한 '가장(家長)'이 되시는 것이 인생의 당연한 과정이며, 부모님도 적잖이 이해하실 것입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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