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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85)국민신당 총재 시절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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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85)국민신당 총재 시절 ②

입력
200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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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4일 닻을 올린 국민신당은 이인제(李仁濟)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 뜨리려는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거센 협공을 받았다. 창당 당일 아침 '국민신당은 YS당'이라며 재를 뿌린 것을 비롯한 음해성 보도가 하루 한 건씩은 터져 나왔다.'국민신당 창당 자금 청와대 관련설'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신한국당이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 잔여분 200억원이 이인제 후보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크게 보도됐다. 국민회의측은 "김현철(金賢哲)씨가 관리하던 대선자금 중 200억원이 손명순(孫命順) 여사를 통해 이인제 후보의 부인 김은숙(金銀淑)씨에게 전달됐다"는 거짓폭로까지 했다. '손 여사 200억 지원설'은 국민회의가 반나절 만에 취소하긴 했지만 이미 신문에는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후였다.

창당대회 당일부터 거듭된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협공과 일부 언론의 악의적보도로 갓 출범한 국민신당은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돌이켜 보면 이 때문에 당시 신당은 치명타를 맞아야 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국민신당을 연결짓는 파상 공세 때문에 신당이 창당되면 바로 신한국당을 탈당해 자리를 옮길 것으로 기대됐던 신한국당의 많은 민주계 의원들이 주춤했다. 그 결과 신당은 더 이상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늘릴 수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대구·경북 지역에서 이인제 후보 지지도가 뚝 떨어지고 유권자들이 한꺼번에 이회창(李會昌) 후보쪽으로 쏠린 것은 결정적이었다. 한때 이인제 후보에게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보낸 이 지역의 민심이 '신당은 YS당'이라는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등을 돌렸고, 한 번 돌아선 민심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이처럼 신당이 생각지도 못했던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이른바 'DJP 연합'이 타결돼 후보 단일화가 이뤄졌다. 또 신한국당은 민주당과의 합당에 성공, 이회창 후보―조순(趙淳) 총재 체제로 한나라당을 출범시켰다. 거대한 두 진영 사이에서 국민신당과 이인제 후보는 그야말로 일엽편주로 망망대해를 헤쳐 가야 했다.

이런 가운데 우려됐던 'IMF 사태'가 터졌다. 11월22일 임창렬(林昌烈) 경제부총리가 "금융 외환시장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을 요청키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는 마침내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IMF는 한국의 대통령 후보 3명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IMF의 정책이행을 약속한다는 각서를 요구해 왔다. 12월3일 IMF의 미셸 캉드쉬 총재가 합의문 서명을 미루면서까지 후보들의 이행 각서를 요구하자 다급해진 경제기획원 관리들은 후보들의 서명을 받으러 동분서주했던 일은 힘없는 나라의 설움 그 자체였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리 당에는 강만수(姜萬洙) 당시 경제기획원 차관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강 차관은 내가 국회의장 시절 재경위 전문위원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였다. 강 차관이 사색이 되어 내놓은 각서는 얼마나 급하게 만들었던지 서류 양식이나 타이핑 상태 등이 도대체 정부의 문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했다.

우리 당은 이미 11월22일 김영삼 대통령이 제안한 '3당 총재―후보 경제 영수회담'을 거부한 바 있었다. "나라를 그처럼 망쳐 놓고 한가하게 밥이나 먹고 사진이나 찍어서 무얼 하겠는가. 우리는 그 시간에 경제 살리기 캠페인을 하겠다"며 청와대 회동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IMF가 정부와의 합의문 서명을 미루고 후보들의 각서 서명을 요구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유세 중이던 이 후보와 통화를 한 끝에 이 후보의 도장을 대신 찍어 주었지만 나라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기가 막히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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