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과천 깊숙한 곳에 들어와 울타리 안에서 며칠을 지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광릉 숲이 아닌 과천 골짜기에서 보낸 편지가 되겠군요.문득 문 밖으로 나가보니, 길옆을 온통 노랗게 만들었던 은행나무 잎새들은 수북한 낙엽이 되어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화려했던 가을빛의 끝은 쓸쓸함으로 맺어지나 봅니다. 사람들이 이 즈음부터 늘 푸른 나무들, 즉 상록수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은 간사해서라기보다 허전해서일 것입니다. 곧게 자란 푸른 나무들은 보기에도 듬직합니다. 잣나무는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존재입니다. 곧게 올라가는 줄기, 흰빛이 언뜻 언뜻하여 더욱 싱그럽게 보이는 진초록의 잎새들, 추운 곳에 자라면서도 어쩜 그리 씩씩한지….
본래 경기도나 강원 북부에서야 자라던 잣나무들을 요즘엔 충청도나 더 아래 지방에서도 만나곤 합니다. 어린 잣나무들을 전국에 심기 시작한지 제법 되어 이제 숲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래 지방 사람들로부터 불평이 올라옵니다. 우리동네 잣나무엔 잣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잣이 잘 열리는 북쪽에서조차 사람품이 너무 들어 잣 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 남쪽에 잣나무를 권유한 이유는 물론 잣이 목적이 아니고 목재나 숲의 기능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잣이 있는 곳에서는 눈길을 주지 않으면서, 잣이 없으면 불평하니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그런데 왜 남쪽의 잣나무들은 열매 잣을 열심히 만들지 않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살기가 너무 편해서입니다. 극복해야 할 추위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은 전혀 없고 따뜻하고 순한 날씨 등 주변 조건이 너무 좋다보니 어려움에 견디며 종족을 보전하려는 본능이 사라진 것이죠. 거꾸로 오염이 심한 장소의 소나무들은 솔방울을 다닥 다닥 달고 있어 이를 환경오염에 대한 지표로 삼고 있을 정도(남산에 올라 소나무들을 한번 쳐다 보십시오)입니다. 나무 입장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껴 죽기 전에 종족을 많이 퍼뜨리려는 생각이지요. 물론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생리적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친 것이구요.
이러한 잣나무들을 보니 마치 "지금 생활이 편안하고 재미있는데 구태여 스스로를 구속하고 희생하는 결혼이나 출산을 왜 하느냐"며 인생을 즐기려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랑 참 많이 닮아 보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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