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정부가 이라크 공격 준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내 학계 인사 1만 4,000명 등 지식인 3만여 명이 대대적인 이라크전 반대 서명 운동을 펼치는 등 반전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당초 미네소타 대학의 한 교수가 반전 서한을 작성해 주변 교수에게 돌려 서명 받는 것으로 시작한 이 운동은 매사추세츠 공대(MIT) 학자들이 9월 말 서한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미 전역으로 퍼졌다.이라크전 지지 여론도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지난 주말에는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가 백악관 주변에서 벌어졌다.
■美 학계에 번지는 반전 여론
미네소타 대학의 한 지질학 교수가 처음 작성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학계의 공개 서한'은 9월 17일 미네소타 대학 신문인 미네소타 데일리에 게재되면서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MIT 학자들이 9월 24일 인터넷(www.noiraqattack.org)에 이 서한을 올린 이후 지난달 말까지 한달여 동안 학계 인사 1만 3,924명을 포함해 모두 3만 35명이 지지 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서한은 '전쟁이란 민주주의 체제의 지도자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정인데 부시 정권은 이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얻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이유를 5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이라크 공격이 미국이나 중동, 나아가 전세계의 이익에 크게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격화해 중동과 전세계의 불안을 불러올 뿐 아니라, 과격한 이슬람 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커지며 반미 감정을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을 제외한 주요 우방들이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 일부 공화당 의원 등 미국내 지도급 인사들조차 공격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반전 논리로 제시됐다. 이밖에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공격해야 할 믿을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의 유엔 결의안에 근거할 때 미국의 독자 공격은 결의안 위반이 될 소지가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반전 단체 운동도 갈수록 확산
반전 운동 단체들의 이라크전 반대 여론몰이도 점차 가열되고 있다. 특히 10만 명 이상이 운집한 지난 주말의 워싱턴 시위에 고무된 반전 운동가들은 내년 초까지 크고 작은 집회를 잇따라 개최할 예정이며 인터넷을 통한 반전 캠페인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반전운동 단체 연합인 '국제 ANSWER'가 주도한 워싱턴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백악관 주변에 거대한 '인(人)의 장벽'을 형성했다. 'ANSWER'는 '전쟁을 멈추고 인종주의를 종식하기 위해 지금 행동하라'(Act Now to Stop War and End Racism)의 약자. 국제 ANSWER는 대 이라크전 반대 투표 사이트(www.votenowar.org)에서 모의 국민투표도 벌이고 있으며, 인권운동가인 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과 걸프전 발발 기념일인 내년 1월 18, 19일 또 한번의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번 주말 뉴올리언스와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릴 시위를 비롯해 미국 곳곳에서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지역별 집회와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다.
■이라크전 지지 여론 하락
한때 70% 이상을 기록했던 미국인들의 이라크전 지지 여론은 갈수록 누그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퓨 리서치센터가 10월 17∼27일 미국 내 성인 1,75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이라크 공격을 지지해 전쟁 찬성 여론이 10월 초의 62%에서 7%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민주당원은 49%만 군사 행동에 찬성해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폭스 뉴스가 최근 여론전문 조사기관 오피니언 다이내믹스사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몇 주전 72%까지 올랐던 이라크 군사 공격에 대한 지지율이 62%로 떨어졌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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