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국정원도 경찰청도 아닌 검찰에서 피의자가 수사관들에게 구타를 당한 끝에 사망했다.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더라도 오랜 시간에 걸친 구타가 있었고 뇌출혈은 지병이 아닌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이며 또한 피의자가 자해 행위를 했다는 수사관들의 진술은 서로 엇갈리며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니, 이것만으로도 검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검찰이 이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도 매우 졸렬했다.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혹은 12시까지) 수년간 추적해오던 사건에 대하여 피의자와 참고인 여러 명이 검찰청 내에서 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 구타하고 사망하고 병원으로 옮기고 하는 떠들썩한 일련의 상황이 일어났을 터인데 검사나 지휘라인에서 몰랐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숨진 피의자의 형이 언론사에 제보함으로써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검찰은 '6시까지 조사 받던 피의자를 12시쯤 점심을 먹기 위해 깨웠더니 의자에 앉았다가 옆으로 쓰러져 구급차로 병원에 옮겼다. 조사 과정에서 무릎을 꿇게 한 적은 있으나 구타 행위는 없었다. 피의자가 자해 행위도 하였다'고 발표했다.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하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폭행 사실을 단정적으로 부인하면서 유족들의 주장을 거짓말로 치부해버린 점만으로도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검찰은 "잠을 안 재우고 수사하는 것은 가혹하지 않느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살인피의자라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 고 대수롭지 않게 응답했다고 한다. 담당 검사에 대한 폭행치사사건 조사시에는 조사한지 4시간여만에 담당검사가 탈진 상태를 보여 귀가시켰다는 것이니 검찰의 국민차별과 편의적인 법적용이 볼썽사납다. 하긴 이회창 대통령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관련 사건에서는 유력한 참고인들을 조사 받기를 원치 않으며 불러봐야 똑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겠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나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는 해괴한 이유로 소환조차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수사를 종결한 것을 보면 검찰의 공정성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좌절감마저 느끼게 된다. 사회 곳곳에서 상설특검제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도 검찰의 신뢰성이 이미 실추될 만큼 실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검찰 주변에서 '이 사건으로 검사나 검찰라인이 책임을 지면 수사실적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라거나 '그 정도의 압박수단도 없이 어떻게 강력사건을 수사하란 말인가'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수사의 어려움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검찰의 이런 반응은 한편으로 그 동안 이 정도의 구타행위는 줄곧 있어 왔다는 자백으로 들리기도 한다.
법으로만 입으로만 인권을 이야기하고 뒤에서는 버젓이 폭력수사가 자행되는 모순된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만약 검찰이 강력사건에서는 예전의 시국사범과 마찬가지로 물리적인 압박없이 수사를 할 수 없고, 어느 정도의 가혹행위를 감수하고서라도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확신한다면 차라리 떳떳하게 폭력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라. 그리고 열 중 한 둘이라도 폭력수사로 인해 거짓 자백을 하는 무고한 시민이 나오는 것은 나머지 8∼9명의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득해보라.
만약 그 논리를 국민에게 설득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의 인권침해 사실을 털어놓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런 후에 굳게 봉쇄되었던 서울지검 11층도 열어놓고 새로운 인권 검찰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검찰을 바라는 우리 내부에서도 무고한 시민이 없게 하기 위해 수사 실적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감수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박 주 현 변호사·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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