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춘수(80)씨가 1년 반 만에 열여섯번째 시집 '쉰한 편의 悲歌(비가)'(현대문학 발행)를 펴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패러디라고 할 수 있겠다"면서도 시인은 "그러나 나의 비가는 릴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강조한다. 릴케가 추구한 종교적 영적인 세계와는 다른 지점에 있다는 의미다.김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유일하게 시작(詩作)인 것처럼 시를 쏟아냈다. 1년 반 전의 시집 '거울 속의 천사'에서처럼 이번 시집에서도 곁에 없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이어진다. 이 애틋한 정이 비가 연작시를 떠받치는 슬픔의 기둥 가운데 하나이다. '여보, 하는 그 소리/ 그 소리 들으면 어디서/ 낯선 천사 한 분이 나에게로 오는 듯한.'('제1번 悲歌') '아내라는 말에는/ 소금기가 있다. 보들레르의 시에서처럼/ 나트리움과 젓갈 냄새가 난다.'('제2번 悲歌') '지금 꼭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너는/ 내 곁에 없다'('제22번 悲歌')
김씨는 역사와 진보에 대해 회의한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개념에 대한 불신의 뿌리를 자신의 20대 체험에서 찾는다. 어떤 사건에 연루돼 일본 도쿄에서 반 년쯤 영어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상상력 때문에 겁을 먹고, 아주 간단한 초보적인 고문도 견디지 못했다. 하지 않은 일도 헌병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한 것처럼 '불었다'. 크게 좌절하고 절망했다. 내 머리 속의 어쭙잖은 생각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이념이 어떤 절박한 현실을 감당해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논리와 내면의 갈등에서 인간 존재의 비극이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했다면서도, 시인은 "역사도 진보도 때로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 또한 모순이고 비극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안 되는 것을 되는 것처럼 처신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비가 연작시를 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대하기'의 포즈이다. 가령 '제9번 悲歌'가 그렇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머리에 붉은 띠 동여매고/ (必勝이라 새긴) / 혼자서도 데모한다./ 바다에라도 길을 내겠다고 바쿠닌의/ 무정부주의처럼 바다를 구둣발로 밟고 가겠다고./ 지금 막 탱자나무 울을 휘젓고 간/ 그가 바로 길인지도 모르는데/ 길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지금껏 걸어온 것이 길이었다. 처음부터 지극한 모순임을 알면서도 짐짓 모순이 아닌 듯 굴어야 한다./ 그도 나처럼 따로 어디다/ 길을 하나 내겠다고 한다./ 이러다 온 세상이 길이 되면 어쩌나,/ 길은 하나뿐이라는데'
시인은 "비의(非義)적인 요소를 줄이고 풀어 쓰기로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어렵지 않게 헤아릴 만하고 뭉클한 감정을 주는 작품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떤 시편들은 단어가 다른 단어와 결합해 생성되는 의미가 아닌, 단어 그 자체의 의미만으로 구축된 구조물을 지향한다. 김씨는 특히 '悲歌를 위한 말놀이' 연작에서 날 것 그대로의 언어 모음을 치열하게 실험한다. "의미의 여운이 바닥에 깔려 있는" 모순을 알면서도, 시인은 끈질기게 의미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말(言)은 말(斗)이 아니다./ 이(齒)는 이(彛)가 아니다./ 배(梨)는 배(復)가 아니다. 모두들/ 아니고자 한다.'('悲歌를 위한 말놀이8'에서)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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