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담동에선 루이뷔통 핸드백을 메거나 페라가모구두를 신고다녀도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아요. 뻔하다는 거지요. '나 이런 명품 브랜드를 쓰는데…'라고 광고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실속은 없거든요. 진짜 멋장이나 귀족층은 맞춤명품, 명품 브랜드라도 로고가 안 박혀서 어디 것인지 모르는 아주 고급스러운 상품들을 사용합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얘기죠."(패션디자이너 장광효).
신맞춤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이른바 '주문맞춤'(customized)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맞춤복이 새롭게 인기를 얻는 것은 물론 맞춤 화장품, 맞춤 골프채, 맞춤 신발, 맞춤 소설에 이르기까지 생활전반에 걸쳐 '나만을 위한 품격'을 갖추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국맞춤양복기술협회 김노호 사무총장은 "고소득층이면서개성있는 삶을 추구하는 30대 중반 이후 전문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최근 맞춤복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고 말한다. 1990년대의 명품 바람에 물린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을 위한 옷'이라는 맞춤복의 이상에 새롭게 가치부여를 하기 시작한 것.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브랜드 제품보다 개인의 취향을 잘 드러낼 수 있는데다 맞춤복의 경우 소유자의 이니셜을 새겨주고 집이나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피팅(가봉)을 해주는 등 품격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남다른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다.
장품도 본격적인 주문맞춤시대에 들어섰다. 국내 최초의 일대일 주문형 맞춤화장품을 표방하는 J& She는 지난달 24일 압구정동에 매장을 열고 영업에 들어갔다. 기존의 맞춤형 화장품들이 일정 종류의 제품 구색을 갖춘 상태에서 소비자의 피부타입을 분석해 그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하는 형식이라면 J& She는 고객의 피부타입을 먼저 분석한 뒤 그에 맞춰 그 사람만을 위한 화장품을 제조하는 형태. 고객이 직접 향을 선택할 수 있고 화장품 뚜껑에는 고객의 이름도 새겨준다.
이 회사 배강규 이사는 "일반 화장품으로는자신의 개성과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 고객으로, '단 한사람을 위한 단 하나의 상품'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이 되는 30∼40대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한다. 스킨과 로션, 세럼, 팩, 클렌징 제품에 화장품 효과 극대화를 위한 맛사지 5회 제공 기초라인 패키지가 100만원에 이를 만큼 고가이지만 하루 평균 10건 이상 회원가입 문의가 들어올 정도로 관심이 높다.
골프채도 맞춤상품인 피팅클럽이 인기를 끌고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골프애호가들은 브랜드를 선호해 '혼마'나 '캘러웨이' 등 수입브랜드가 시장을 지배했지만 최근들어 맞춤제품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15년째 맞춤 골프채를 생산해오고 있는 '스포랜드 골프'의 조용일 사장은" 올해 부쩍 맞춤골프채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서울시내에만 10여곳에 이를 정도로 성업중"이라고말한다.
맞춤골프채는 골퍼의 신체조건이나 병력, 라운딩 습관 등을 종합 검진한 뒤 동영상으로 스윙을 분석해 골퍼에게 가장 알맞은 골프채를 맞춰주는 형식. 그립이나 색상을 선택할 수 있고 특히 헤드 부분에 사용자의 영문이름을 새겨주기 때문에 사용자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조 사장은 "고객들이 맞춤상담을 거치면서 '비싸면 무조건 좋은것'이라는 인식을 바꾼다"며 "고객중에는 대기업 회장님이나 사모님들도 많은데 전에 2,000만원짜리 최상급 쓰던 사람 조차도 130만원대 맞춤상품으로 바꾸면서 만족스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춤 붐은 신발이나 연애소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운동화 업체 나이키는 미국본사 홈페이지(www.nike.com)를 통해 '나이키ID' 제품을 주문생산판매중이다. 홈페이지에 회원 등록을 하고 ID를 발급받은 사람이 나이키 제품 중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선택하고 칼라와 사이즈를 주문하면 그 신발에 고객의 인터넷 ID를 새겨준다. 배달비용은 별도. 국내서는 아직 서비스되지 않지만 유학생들을 통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또 인터넷 전자소설제공 사이트인 유어노블닷컴(www.yournoble.com)은 고객이 소설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원하는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 등을 주문받아 이야기를 전개해서 전자소설로 보내준다.
맞춤상품의 인기는 갈수록 획일화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반동심리 및 개성추구 욕구, 그리고 명품의 대중화에서 기인한다고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패션컨설턴트인 강윤정씨는 "예전에는 신분에 대한 구별로 명품브랜드의 로고파워에 의존하면 그만이었지만 요즘은 중고등학생들도 명품을 들고다니는 시대다. 더 이상 명품의 후광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좀 더 실속있게, 그러면서도 남다른 품격의 계층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쪽으로 소비자들의 기호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추세와 맞물려 맞춤상품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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