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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정치 코미디의 충분조건

입력
200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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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서 계속되고 있는 정치 코미디의 종착역은 어디인가.민주당의 코미디를 살펴보자. 자기당 대통령 후보가 버젓이 있는데도 다른 후보의 출마선언에 거리낌없이 참석한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후보의 창당발기인에 "법적인 하자는 없다"고 강변하며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오죽 민망했으면 창당준비위측에서 "정치 도의상 그럴 수 없다"며 발기인명단에서 제외시켰을까. 전국구 의원들은 탈당하면 의원직이 날아가니까 당 지도부에 제발 제명 좀 시켜달라고 공개리에 요구한다. 정치적 결단을 하려면 위험도 감수해야지, 어떤 경우에도 의원직만은 유지하겠다는 심보다.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는 의원들은 탈당도 하지 않으면서 탈당계를 작성해 집단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탈당계를 썼으면 당을 나가야지, 탈당을 예고만 하고 있는 것은 무슨 짓인가. 일부 의원들은 아예 탈당계를 쓰지 않았다고 발을 뺀다. 정몽준 의원의 여론 지지도가 빠질 조짐을 보이자, 그 사이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국민경선 관리 위원장을 지낸 중진 인사가 "국민 참여경선은 사기극"이라며 "수 틀리면 모든 것을 까발려 버리겠다"고 공갈을 치고, 당 대변인으로 있으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맹렬히 비난했던 의원이 한나라당 품에 안기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속한다.

노무현 후보측은 의원들이 좌고우면하고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당이 단합되지 않아 여론지지도가 오르지 않는다 주장하고, 의원들은 노 후보가 여론 지지도가 낮아 당선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맞선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순환논리가 공멸의 함정을 파고 있다.

민주당은 새 천년을 주도하겠다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출범했다.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 '노풍'이 일자 한국정치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 당내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선장 없는 난파선의 모습이다. 대표가 자기 당 대통령후보를 지지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가 기사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으로 여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권 탈환을 노리는 야당도 아니다. 대부분 의원들은 코 앞에 다가온 대통령 선거보다는 2004년 봄에 있을 자신의 선거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혼자만 살아남겠다는 생존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다 보니 좌충우돌이 다반사고, 여러 형태의 정치 코미디가 속출하고 있다.

정치 코미디의 주역은 대부분이 여당 간판이 좋아 국민의 정부에 무임승차했던 해바라기형 정치인들이다. 물론 이들의 무임승차를 허용한 것은 당시 지도부의 책임이다. 민주당이 1997년 12월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초심으로만 돌아갔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단심(丹心)을 조금만 헤아렸어도 좋았을 것이다. 이들의 단심은 정권교체가 최고의 개혁이라고 믿었고, 소외된 세력이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게 국가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개혁의 주체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고, 소수정권의 한계를 무리하게 극복하려다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민주당의 참담한 실패는 우리 정당이 아직은 당내 민주주의를 도입할 만큼 성숙돼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는 확고한 리더십이 건재하고, 의원들의 수준이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탈당 후 리더십 공백을 맞았고, 정체성을 상실한 나머지 오합지졸을 모아놓은 꼴이 됐다. 정당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모여 권력을 창출하고자 하는 이념적 결사체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을 정당으로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코미디는 우리나라 정당 정치를 퇴보시키고 있다.

이 병 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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