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11월1일 한국의 첫 월간 잡지 '소년'이 첫 호를 냈다. 1965년 한국잡지발행인협회(지금의 한국잡지협회)가 11월1일을 잡지의 날로 정해 이 날을 기념해오고 있는 것은 '소년'의 창간을 기려서다. 최남선이 창간해 국판 60쪽 안팎으로 나오던 이 잡지는 국권회복을 촉구하는 기사들 때문에 통감부와 총독부로부터 여러 차례 압수와 발행금지 처분을 당한 끝에, 1911년 5월 통권 23호로 종간됐다. 발행처는 최남선이 창설한 출판사 신문관(新文館). 최남선은 창간호에서 "우리 대한으로 하여금 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 하랴 하면 능히 이 책임을 감당하도록 그를 교도하여라"라고 창간 취지를 밝혔다. 그에 따라 편집 방향도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지식 보급과 계몽으로 잡혔다. 초기에는 최남선의 개인잡지 성격이 강했지만, 차차 이광수·홍명희·박은식 등의 문필가들이 필자로 가담했다.창간호 권두에 실린 최남선의 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신체시(新體詩) 또는 신시(新詩)의 효시로 꼽힌다. 그 첫 연은 이렇다.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제목부터 번역투인데다가 본문의 정조도 한 세기 뒤의 눈으로 보면 퍽 유치하지만, 이 시는 4·4조나 7·5조 같은 그 때까지의 창가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시 형태를 취했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사가 생략할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그래도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요즘 젊은 시인들의 작품까지의 거리는 아득하다. 그 거리는 지난 한 세기동안 우리의 문학적 감수성이 숨가쁘게 질주해온 거리다.
고 종 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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