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연정 붕괴로 아리엘 샤론 총리가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특히 연정 붕괴에 따른 정국 혼란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도 부정적인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갈 길이 달랐다
30일 노동당 당수인 비냐민 벤-엘리저 국방장관과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 등 노동당 소속 각료 전원과 차관급들이 샤론 총리에게 사직서를 던졌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폭탄테러 앞에서 연합작전을 펼쳤던 리쿠드당·노동당의 동거체제가 출범 20개 월 만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연정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이·팔 분쟁 지속의 중요한 원인인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 관련 예산 배정 문제였다. 20여 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 정착민을 위해 예산을 늘리고 청착촌을 확장해야 한다는 샤론 총리의 주장에 대해 노동당은 정착촌을 철거, 관련 예산을 삭감해 사회복지 및 국방 부문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
정착촌 문제에 대한 노동당의 반발은 유혈사태 장기화와 경제 피폐를 불러온 샤론 총리의 강경 일변도 정책을 거부하는 반기인 셈이다. 벤-엘리저 장관은 "테러와도 싸워야 하지만 지금은 외교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면서 "샤론 총리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비난했다.
▶샤론의 선택
노동당 각료들의 사직서를 받아든 샤론 총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극우 정당 중심의 소수 연정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조기 총선을 실시해 정권을 재창출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노동당(25석)의 결별로 샤론 총리의 리쿠드당은 의회 전체 120석 가운데 과반에 못 미치는 57석만 확보한 상태여서 여소야대 정국이 불가피하다.
샤론 총리 측근들은 조기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조기 총선을 하면 리쿠드당이 이끄는 소수 연정이 5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자신감이다.
그러나 정작 샤론은 좀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무턱대고 조기 총선을 할 경우 오랜 정적인 벤야민 네탄야후 전 총리의 도전을 따돌리고 당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리쿠드당 당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샤론 총리는 노동당의 연정 탈퇴 이후 연설에서 "책임감을 갖고 현명하게 국가를 이끌어 나가겠다"며 소수 연정 유지 방침을 시사했다.
▶멀어져 가는 중동 평화
샤론 총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이·팔 사태에는 나쁜 징조가 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화적 접근을 원했던 노동당의 연정 탈퇴로 이스라엘 정부의 강경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샤론 총리는 31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임시정부 수반의 추방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등 강경파의 대표적인 인사인 샤울 모파즈 전 군참모총장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등 매파에 대한 구애에 나섰다.
특히 샤론이 당권 유지를 위해 매파 성향이 더 강한 네탄야후와 선명성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도 우려할 만한 점이다. 90일 이내에 조기 총선을 해도 2005년 팔레스타인 독립국 창설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3단계 평화안 역시 상당 기간 추진이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병주기자 bjkim@hk.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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