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투자자들을 웃기고 울린 것이 바로 개인용 컴퓨터(PC)다. 반도체는 물론 정보기술(IT)경기 전체를 좌우하는 PC수요에 따라 IT업종 주가는 물론, 주식시장 전체에 흥분과 실망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올 연초만 해도 1999년 말 '밀레니엄 버그' 때 대량으로 팔린 컴퓨터의 3년 교체 수요 기대로 컴퓨터 등 기술주들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3월 신학기가 시작돼도 PC판매가 늘어나지 않자 컴퓨터업체 주가는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상반기 사상 최대 이익을 낸 기업들이 여유자금으로 PC를 교체하고 IT투자를 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반기 들어 물거품이 되면서 반도체 등 전체 기술주들이 찬밥신세가 됐다.
전문가들은 "연말과 내년 증시도 PC에게 물어보라"며 PC 출하지표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있다. 데스크탑과 노트북, 서버 등 PC판매가 늘어나야 그만큼 반도체칩 수요 증가로 가격이 오르고 반도체 주가도 계속 상승할 수 있는데다, 가정과 기업에서 PC를 많이 구입해야 시스템 구축에 따른 IT투자가 늘어나 기술주의 전체 경기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PC경기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청신호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내리막을 걷던 전세계 PC출하량이 3분기를 고비로 되살아 나고, 이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 델컴퓨터·HP와 국내 삼보컴퓨터 주가가 많이 올랐다.
최근 발표된 미국 상무부의 10월 내구재 주문조사에서 컴퓨터와 부속장치 주문은 9월보다 9.3% 늘어 3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이 그만큼 PC를 많이 샀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인 인터내셔널데이터코프(IDC)의 조사결과 3분기 전세계 PC출하량은 2분기보다 5.9%증가한 3,255만대로 집계됐다.
PC가격이 하락하면서 소비자들이 PC구입을 늘렸고 기업 수요도 점차 회복이 나타나고 있어 4분기에도 두자릿수 회복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게 IDC의 분석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PC수요가 회복되고 있다는 델컴퓨터 회장의 발언이 나온데 이어 그동안 PC 산업에 대해 불투명한 전망만을 제시했던 인텔의 최고경영자(CEO) 크레이그 배럿조차 내년 초에는 컴퓨터 산업에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 초 이런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뀐 뼈아픈 경험을 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시적인 계절 효과일 뿐"이라며 착시현상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크리스마스 때 PC 선물 수요 등으로 계절적으로 연말연초가 가까워오면서 PC판매가 다소 늘어나는 것일 뿐 아직 PC교체나 업그레이드에 대한 수요는 부진하다는 진단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사용중인 PC의 데이터처리 속도가 웹서핑과 이메일 워드프로세서 등을 처리하기에 충분한 수준인데다 소비자들은 PC를 살 돈으로 디지털카메라와 DVD플레이어 등을 구입하고 있다.
우리증권 김익상 연구원은 "소비자들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PC에 그다지 불만이 없다"며 "기업과 공공기관 일부에서 윈도XP를 도입하면서 최근 교체수요가 살아나고 있지만 내년 3분기 정도 돼야 PC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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