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끈적끈적 스크린 "야해졌네"/한국영화 베드신 폭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끈적끈적 스크린 "야해졌네"/한국영화 베드신 폭발

입력
2002.10.31 00:00
0 0

형수와 시동생이 벗는 '중독', 30대 주부의 섹스 게임을 다룬 '밀애', 남자의 성적 단련기 '마법의 성', 10대의 성을 다룬 '몽정기', 여기에 노인들의 섹스를 다룬 '죽어도 좋아' 까지. 2000년 '해피엔드' 이후 한국 영화 중 베드신이 기억될 만한 영화는 많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개봉한 '봄날은 간다'는 아련한 사랑의 기억만을 남겼을 뿐이다. 그러나 올들어 유난히 스크린에 농도 짙은 베드신을 포함한 영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너그러워진 심의, 높아진 수위

"음모만 나오지 않으면 섹스 표현 수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제작자의 말처럼 한국 영화의 표현 수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죽어도 좋아'처럼 치모와 구강 성교만 나오지 않는다면 '로드 무비'처럼 남성간의 끈끈한 섹스도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는다. 시동생이 형수와의 섹스 장면이 강도높은 애무로 시작, 구체적인 섹스 장면까지 나와도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으며, 성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사가 만발하고 속옷을 입은 교사의 뒷모습이 클로즈업되는 '몽정기'도 '15세 관람가'이다. 보수적인 심의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잇달아 위헌 판결을 내리자 '18세 관람가'가 허용하는 섹스 강도는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등급 완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김미희 좋은 영화 대표는 "사회적통념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정사 장면을 촬영하면서 심의를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제작비가 부족하면 벗겨라?

경기 불황에는 치마가 짧아진다. 충무로에 이 법칙을 적용해도 딱 들어맞는다. 제작비가 적어지면 노출이 많아진다.

'2009 로스트 메모리스' '아유레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블록버스터 영화의 잇단 실패 후 충무로의 투자 분위기는 급랭한 상태. 이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예감해온 충무로는 중저예산 영화로 기획을 급선회했다. "블록버스터라면 누가 주연인가, 제작비는 얼마인가, 컴퓨터그래픽은 볼만한가 등의 질문이 따르지만 에로 영화라면 당연히 얼마나 벗었는가가 첫 질문이다"라는 제작자의 말은 멜로 영화가 늘어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다. "호러와 멜로는 제작비를 적게 들이면서도 관객에게 충격 요법으로 쓸 수 있는 장르"라는 충무로의 법칙이 올해 그대로 구현되고 있는 셈.

높아진 조폭 영화의 표현 수위도 멜로 영화의 벗기기 시도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미 조폭 영화의 폭력과 성적 폭언의 수준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때문에 언어적 상상력으로 부풀려진 성적 환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충격 요법에 익숙해진 관객을 붙잡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베드신이 염가로 영화를 제작하는 쉬운 방법은 결코 아니다. '밀애'의 경우 톱스타 몇몇에게 주연 배우를 제의했었으나 "베드신이 자신 없다"는 배우의 말에 캐스팅이 상당 기간 난항을 겪었다. 일단 베드신을 촬영할 경우 배우의 신비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배우들은 전라 노출신을 꺼리는 편. 때문에 베드신 대역설도 영화마다 따라다닌다. '중독'의 이미연은 "인터넷 자키가 베드신을 대신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영화사는 "대역을 써 촬영을 했으나 완성도가 떨어져 이미연이 직접 촬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영화는 민감한 노출 장면에 무명 배우를 대신해 촬영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예민한 관객의 눈을 속일 수 없어 감독이나 제작자는 애를 태운다.

■눈요기 보다 작품성 중시 경향

노출 수위는 배우의 고집에 맞춰줄 수 밖에 없는 형편. '로드무비'의 경우 배우들의 '헌신적' 연기에 힘입어 전라신이 나왔고, '밀애'의 경우도 배역을 100% 이해한 김윤진이 노출 정도에 연연해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베드신은 이불이나 옷 등으로 신체를 '은폐'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배우들은 계약 단계에서 가슴, 배, 엉덩이 등의 노출 정도를 세세하게 조건으로 내건다. 때문에 베드신 촬영 현장은 꽤나 삼엄한 편. 일반적으로 영화 촬영 현장에는 20∼30명의 스태프들이 상주하지만 베드신은 감독, 촬영감독, 조명 감독 등 3, 4명만이 현장을 지켜볼 수 있다. 베드신이 많은 영화는 편집 과정 역시 중요하다. 현장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민망한 장면을 일일이 손보는 일이 이때 이뤄진다.

진한 베드신의 주인공으로 스타급 연기자가 많아지며 예전처럼 눈요기로 벗기려는 영화보다는 작품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요즘 달라진 모습 중의 하나. 남성적 힘의 과시를 위해 여성의 신체를 훑어내리는 듯한 카메라 워킹 대신 멀리서 카메라를 잡는 롱샷이나 배후샷으로 분위기만 연출하는 방식도 고급스런 베드신을 연출하는 한 방법이다. 때문에 "기대보다 약하다"는 관객들이 반응도 적지 않지만, 한국 영화가 더욱 격조높은 베드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배우의 자세나 촬영 기술 등 넘어야 하는 산이 한 두개가 아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