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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교수의 국제潮流]유라시아 공동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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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교수의 국제潮流]유라시아 공동체를 꿈꾸며

입력
2002.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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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년전 블리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르는 9,300㎞의 철도를 횡단한 적이 있다.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이루크츠크에 있는 상하이마케트였다. 이 곳은 일본과 남북한의 상인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모든 국민과 인종이 집중된 곳으로 유라시아대륙의 인종시장이란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시장의 건물구조나 기타 인프라 등이 원시적이어서 우리의 50, 60년대 재래시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시장의 운영 또한 무질서하기 짝이 없었다. 몰려오는 상인들의 거주허가 역시 뒷거래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했고, 상품도 조악하거나 모조품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런 시장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집착을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 속에서 옷을 벗어 젖힌 채 목청을 높이는 국적 불명의 상인들 속에서 에너지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몇 달씩이나 집을 비운 채 장사를 위해 옌벤을 떠나온 조선족 여인들로부터 한국여성의 강인함이 와 닿았다.

이루크츠크의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행위 속에서 한편으로 이것이 아시아적인 생의 경쟁형태인가를 자문하면서 다른 한편 유라시아 공동체의 싹을 보는 듯했다. 유라시아 곳곳에서 모인 상인들은 각국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필자는 유라시아지역 주민들이 이런 소규모의 무질서한 시장에서부터 공동으로 협력하고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미래의 방안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각종 경제협력의 성과로 남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 합의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 잠잠했던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논의가 다시 일기 시작했고, 북한의 경제개방 계획 발표 등으로 활기를 띠었다. 철의 실크로드가 회자하기 시작했고 대유럽 물류비용 절감효과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런 논의는 북한의 핵문제로 주춤할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지나친 경제주의적 발상이다. 구 소련이나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이 지역, 특히 시베리아지역의 풍부한 에너지, 산림, 광물 자원에만 너무 눈독을 들여 왔다. 중동을 가든, 동구에 진출하든 우리는 단기적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했다. 오죽하면 우리는 그들의 눈에 '아시아의 유태인'으로 비춰졌던가. 몇 년 전 한 경제인이 "시베리아에 가보니 돈이 바닥에 깔려있더라"고 한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단기적 경제 이익만을 노리던 자세에서 이제 새로운 유라시아지역의 주민 공동체를 건설하는 심정으로 시베리아를 바라보아야 한다. 시베리아 철도는 주민들에게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문화를 나르고 삶의 중심을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제적 이익을 나누면서 동시에 광활한 대륙의 주인들에게 그들의 필요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업문화를 심어야 한다.

유라시아의 러시아인을 비롯한 여타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보다 인종적 차별의식이 약할 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현지 한인 동포 역시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우리가 유라시아지역 공동체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여기에 있다. 탈냉전 이후 경제를 중심으로 이 지역 사람들과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그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비전의 중요한 소스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 학계, 문화계, 언론계, 지방자치단체들이 긴밀히 협조하여 우리의 대외 진출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시급히 창조해야 한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유라시아 공동체 준비위원회는 노보시비르스크의 시베리아 협약과 회의 및 접촉을 통해 각종 방안을 찾고 있다. 새로운 모델 창조에 기관과 개인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하용출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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