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익을 위해 '악의 축' 운운하며 세계를 전쟁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자기 파괴적 행위일 뿐입니다."한국철학회가 마련한 '다산강좌'의 강사로 초빙돼 방한한 세계적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71) 전 캐나다 맥길대 교수는 29일 첫 강연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 이라크 전쟁 선포 등 최근 미국의 행보를 비판했다. 그는 북한 핵개발 논란과 관련, "북한 정권의 행태는 기괴하고 합리성이 결여됐다"고 전제하면서도 "미국이 동맹국과의 연대 등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내던지고 군사력의 압도적 우세를 바탕으로 군사 만능주의, 미국 전능주의로 치달으며 세계를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빠트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헤겔 연구의 권위자로, 좌파 계열의 신민주당을 이끌며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종교갈등 문화다원주의 등 현대 사회에서 제기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왔다. 그의 학문적 키워드는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 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는 타자로부터의 인정이 필수적이며, 상호간의 인정이 인간의 정치적 실존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분석 틀을 적용, 9·11 테러를 이슬람사회가 '패퇴와 몰락의 역사'로 기록된 현대사를 거치며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려는 응전 방식의 하나로 해석했다. 테일러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대에서 열린 '근대성과 세속적 시간' 주제 강연을 시작으로, 11월 2일까지 한국프레스센터, 전남대, 경상대에서 각각 '종교와 정치' '계몽의 두 얼굴' '다원주의와 현대 종교'를 주제로 강연한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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