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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타이타닉호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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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타이타닉호의 비극

입력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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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4월15일 새벽 2시18분, 미주 북동부 뉴펀들랜드 400마일 해상에서 타이타닉호가 침몰한다. 승객과 승무원 2,228명을 태운,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 빙산에 부딪쳐 1,523명이 숨진 이 일은 지금까지도 '20세기의 비극'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오늘의 화폐가격으로 환산하면 무려 4억달러를 들여 만든 타이타닉호는 크기에 있어서도, 호사스러움에 있어서도,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그야말로 세계 최고였기에 사고의 충격은 더했다.■ 타이타닉호의 비극은 건조되기 전부터 잉태되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항공운송의 막이 열리지 않았던 시대, 대서양 운송은 타이타닉호를 만든 화이트스타 라인과 큐나드 라인 등 2개 회사가 경쟁하고 있었다. 그런데 큐나드 라인이 세계 최고속도를 자랑하는 신형 여객선 루지타니아호를 건조한다는 소식에 접한 화이트스타 라인은 이에 뒤질세라 부랴부랴 타이타닉호를 만든다. 타이타닉호는 대서양 운송의 기선을 뺏기지 않으려는 경쟁심에서 태어난 것이다.

■ 1912년 4월10일 영국의 사우스햄프턴을 출발한 때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도 타이타닉호에 동승한다. 그리고는 "최단 시간 내에 뉴욕에 도착해야 한다"고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을 몰아붙인다. 그래서 예년에 비해 기온이 현저히 낮다는 기상보고도, 항로상에 빙산이 적지 않이 발견되고 있다는 다른 선박들의 무선연락에도 불구하고 배는 최고속도로 달렸다. 심지어 빙산에 충돌한 운명의 밤에도 안개가 잔뜩 끼었는데 관측을 맡은 선원은 망원경도 갖고 있지 않았다.

■ 1997년 한국을 강타한 IMF 금융위기는 한국판 '타이타닉호의 비극'이었다. "군사정권에 뒤질 수 없다"며 물가안정에 집착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고집으로 인해 어떤 경제관료도 환율인상의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 나타났을 때도 그들은 축소 또는 은폐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5년이 흐른 지금, 이번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보기관들이 북한 핵 개발의 징후를 알고도 축소 또는 은폐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다. '타이타닉호의 비극'이 또다시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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