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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26)인간의 삶·죽음과 관련된 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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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26)인간의 삶·죽음과 관련된 신들

입력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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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곧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시간이다. 시간의 신으로서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계절의 흐름을 주관하는 신들이다. 중국 신화에서는 세계의 다섯 가지 방향을 맡은 신들이 있다. 동방의 신 복희(伏羲) 서방의 신 소호(少昊) 남방의 신 신농(神農) 북방의 신 전욱(□頊)중앙의 신 황제(黃帝)가 그들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다섯 가지 방향은 단순히 지역적인 개념이 아니고 각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관련한 다섯 가지 우주적 기운과 속성을 의미하게 된다. 동풍과 관련한 계절은 봄이 되고, 서풍과 관련한 계절은 가을이 되며, 남풍과 관련한 계절은 여름이, 북풍과 관련한 계절은 겨울이 된다. 중앙의 바람과 관련한 계절은 환절기가 될 것이다. 앞서의 다섯 대신(大神)들에게는 각기 한 명의 보좌신이 있는데 이들 보좌신이 사실상 각 계절을 담당하게 된다. 즉 봄의 신은 구망(句芒) 여름의 신은 축융(祝融) 가을의 신은 욕수(辱收) 겨울의 신은 현명(玄冥)이다.이중 가을의 신인 욕수는 서방의 대신 소호의 아들로서 아버지와 함께 서방 끝의 땅 일만 이천리를 다스렸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이 신은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 발톱을 하고 온 몸에 흰 털이 났는데 큰 도끼를 손에 든 모습을 하고 있다 한다. 고대인들은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죽음과 상관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신에게 징계와 형벌의 기능을 부여했다. 한 번은 정치를 잘못한 괵(□) 나라 임금의 꿈에 이 신이 나타났다. 신은 괵나라가 곧 외국의 침략을 받을 것을 예고하였고 과연 그 후 괵나라는 진(晋)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봄의 신 구망은 네모진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흰 옷을 입었는데 두 마리의 용을 타고 다녔다 한다. 구망이란 글자 자체가 꼬불꼬불한 새싹을 의미하므로 이 신은 봄의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훌륭한 정치를 행했던 진목공(秦穆公)의 꿈에는 이 신이 나타났다. 신은 19년의 수명을 늘여주며 더욱 좋은 치적을 이룰 것을 당부하고는 사라졌다.

이 밖에도 중앙 황제의 보좌신인 후토(后土)는 열명(□鳴)이라는 신을 낳았는데 열명은 열두달의 신12명을 낳았으니 시간의 신인 셈이다. 또 '산해경'에는 밤의 신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들의 생김새는 작은 뺨에 붉은 빛의 어깨를 하였는데 모두 열 여섯 명이 손을 잡고 밤을 지킨다 하였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인간은 오래 살기도 하고 일찍 죽기도 한다. 인간의 목숨을 관장하는 신은 어떠한 신일까. 고대 인류는 인간의 운명이 하늘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여 특별한 별자리의 신이 생사를 주관한다고 생각하였다. 중국 신화에서는 사명성(司命星) 남두성(南斗星) 북두성(北斗星) 노인성(老人星)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명신은 초(楚)나라 지역에서는 대사명(大司命)과 소사명(小司命)으로 구분하여 숭배했는데 전자는 성인, 후자는 아동의 생사를 주관했다. 사명신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에 대한 모든 기록을 관리했다. 그리고 산 사람이 큰 죄를 저질렀을 경우 300일, 작은 죄를 저질렀을 경우 사흘의 수명을 삭감했다. 그밖에 남두성은 삶을, 북두성은 죽음을 주관한다고 믿었고 노인성이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지고 사람들이 장수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남두성과 북두성이 그려져 있고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노인성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남두성 북두성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조선 명종때에 북창(北窓) 정렴(鄭□· 1506∼1549)이라는 도인이 있었다. 그가 어느날 한 소년을 보니 얼굴은 잘 생겼는데 요절할 운명이었다. 정렴이 소년의 신세가 가여워서 탄식을 하자 소년의 부모가 이상히 여겨 그 연유를 알아내고 정렴에게 매달렸다. 운명을 바꿀 방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졸리다 못한 나머지 정렴은 그 부모에게 한 가지 방법을 일러줬다. 아무날 북한산 모처에 가면 흰 옷 입은 노인과 검은 옷 입은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을텐데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대접하고 무조건 살려달라고 빌라는 것이었다. 그 소년과 부모가 과연 그날 북한산 어느 곳엘 갔더니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정렴이 시킨대로 하자 바둑이 다 끝난 후 흰옷의 노인이 검은 옷의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렴이 시킨 모양인데 할 수 없이 수명을 바꿔줄 수 밖에 없겠소." 그리하여 소년은 요절에서 장수로 운명이 바뀌어 돌아왔다. 그때 흰 옷의 노인은 남두성이었고 검은 옷의 노인은 북두성이었다고 한다. 위의 사례들과 이야기로 미루어 우리나라에도 고대부터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와 그 신들에 대한 믿음이 뿌리를 내렸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생사와 관련한 신은 별자리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도 있었다. 집안의 부뚜막 혹은 아궁이를 지키는 신 곧 조왕신(□王神)이 그것이다. 그는 본래 대신 전욱의 아들이었다고도 하는데 일년 내내 집안에서 일어나는 잘잘못을 관찰했다가 섣달 스무사흘 혹은 나흘되는 날 하늘에 올라가 천제께 모든 일을 보고했다 한다. 천제는 보고를 듣고 저지른 죄에 따라 수명을 깎았다.

지난 회에서 얘기했지만 지상에서 생사를 주관하는 가장 큰 신은 태산(泰山)의 신이다. 죽은 사람의 혼은 모두 태산으로 가서 태산신의 심판과 지배를 받게 되어있다. 태산신은 태산부군(泰山府君)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죽은 자 세계의 최고 지위를 차지하게 되고 태산부군은 그 밑의 관료로 지위가 격하된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 태산신과 함께 죽은 자의 세계 곧 지하세계를 지배했던 신으로는 토백(土伯)이 있다. 초나라의 가요집 '초사'(楚辭)에 실린 '초혼'(招魂)이라는 노래에 따르면 토백의 모습은 소의 몸을 했는데 등이 튀어나오고 세 개의 눈, 호랑이의 머리에 날카로운 뿔이 돋았다고 한다. 그는 피 묻은 손에 포승줄을 들고 사람을 쫓아다녔고 달게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세계로 끌고 가는 저승사자의 원시적인 존재가 아닌가 한다.

인간의 생사를 주관했던 신들도 있지만 삶에 위협을 주었던 귀신 도깨비 같은 신적 존재도 있다. 대신 전욱에게는 몇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흉물스러운 귀신으로 변모했다 한다. 훌륭한 아버지를 닮지 않은, 그야말로 불초(不肖)한 아들들인 셈이다. 아들 중의 하나는 죽어서 학귀(□鬼) 곧 학질 귀신이 되었고 하나는 어린애를 잘 놀래키는 소아귀(小兒鬼)가 됐다. 다른 하나는 헌 옷을 입고 죽만 먹고 다니더니 정월 그믐날 골목에서 쓰러져 죽어 궁귀(窮鬼) 곧 가난뱅이 귀신이 됐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날이면 죽과 헌 옷으로 골목에서 제사를 드려 이 가난뱅이 귀신을 떠나보내려 했다.

또 하나의 아들은 도깨비의 일종인 망량(□□)이 됐다. 망량은 세살 먹은 어린애처럼 생겼는데 붉은 눈에 긴 귀를 하고 머리가 칠흑 같았다 한다. 사람 소리를 흉내내어 홀리는 것이 특기였다. 전욱의 후예는 아니지만 망량과 같은 도깨비의 일종으로 이매가 있다. 이매는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하고 다리가 넷인데 역시 사람 홀리기를 좋아했다.

이 못된 귀신과 도깨비들도 천적이 있었다. 이들을 다스리고 감독하는 더 무서운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아득한 푸른 바다 한 가운데에 도삭산(度朔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꼭대기에 큰 복숭아 나무가 있어 줄기가 삼천리까지 뻗어있었다. 그 가지의 동북쪽을 귀문(鬼門)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모든 귀신이 출입하는 곳이었다.

이 산에는 신도(神□)와 울루(鬱壘)라는 두 신이 있어 모든 귀신을 단속했다. 이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귀신을 갈대끈으로 묶어 호랑이 밥이 되게 하였다. '신이경'(神異經)이라는 책을 보면 척곽(尺郭) 혹은 탐사귀(呑邪鬼)라고 하는 신도 신도와 울루 못지 않았다. 이 신은 귀신을 밥으로 삼고 이슬을 음료수로 삼았는데 아침에는 삼천명의 귀신을, 저녁에는 팔백명의 귀신을 삼켜먹는다고 했다. 후세에 사람들은 대문에 신도와 울루의 모습을 그려 붙이거나 복숭아나무 부적, 갈대끈 등을 매달음으로써 재난을 일으키는 악귀의 침입에 방비하고자 했다. 이처럼 대문에 그려 붙여져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 역할을 하는 신을 문신(門神)이라고 부른다.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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