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된 명절이나 축제가 여럿 있습니다. 가장 권위 있는 것을 꼽으라면 역시 예수님이 태어난 날, 성탄절이겠죠. 20여년 전, 밤 12시 이후 통행금지가 있던 때에도 성탄전야에는 이를 해제할 정도였이니까요. 그래서 본뜻과는 달리 성탄전야는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밤이었습니다. 해마다 매스컴이 ‘광란의 밤’으로 표현할 정도였죠.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발렌타인데이입니다. 물론 초콜릿 상인들의 상혼이 부추긴 점도 있지만 완전히 정착을 한 느낌입니다. 해마다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대형 백화점부터 동네 구멍가게까지 초콜릿을 산처럼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질세라 나타난 화이트데이도 이제는 발렌타인데이와 보조를 거의 같이 하는 느낌입니다. 역시 예쁘게 꾸민 사탕봉지가 거리를 덮습니다.
요즘 또 하나 급부상하는 수입 명절이 있습니다. 할로윈데이입니다. 10월31일, 내일입니다. 유럽의 켈트족이 악령의 재림을 막기 위해 지낸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할로윈축제는 기괴한 변장을 하고 참석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직은 거리를 휘저을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처럼 자리를 잡을 전망입니다. 유명 호텔과 놀이공원, 대학가의 카페촌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할로윈축제 변장 소품을 판매하는 사이트가 성업중입니다.
사실 성탄절을 제외하면 모두 수입과정에서 뜻이 조금씩 변질된 축제입니다. 변질의 일관된 흐름은 ‘의미’보다는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됐다.’ 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월드컵 응원에서 보여줬듯이 우리 민족은 응축된 놀이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토종 명절과 축제는 그런 에너지를 발산하기에는 성격이 적합하지 않습니다. 즐기는 축제라고 하더라도 그 방식이 세대를 모두 아우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수입 축제에 더 신이 나는 것은 아닐까요.
모두가 열성적으로 참여해 신명을 털어내는 우리의 명절이나 축제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아직 월드컵의 미열이 남아있는 올 가을, 누군가 보내온 할로윈축제 호박가면을 보면서 떠올리는 생각입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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