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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철, 7년만에 신작 선보여/빛으로 환원된 일상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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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철, 7년만에 신작 선보여/빛으로 환원된 일상의 기억

입력
200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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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 하동철(60·서울대 교수)씨가 11월 1∼24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02―1020)에서 7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빛·공간·구조'를 주제로 길이 9m짜리 대형작업 등 신작 60여 점을 선보인다.하씨는 20여년간 빛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왜 빛인가. 석양빛 등진 언덕을 바라보며 하루종일 어머니를 기다리던 고향의 추억, 아버지 상여를 따라가던 날 태양의 눈부심과 새삼스럽게 높아보이던 푸른 하늘, 가까이 지내던 스님의 다비장에서 보았던 불길의 일렁거림과 산사의 뜬구름. 작가가 털어놓는 작품의 동인은 이런 기억들이지만 막상 그의 그림 어디에서도 그 구체적 흔적은 없다.

정확한 수치와 각도에 따라 자를 대고 그려진 직선들, 질서정연한 논리에 따라 대칭적으로 혹은 순환적으로 배치된 화면 구조, 청색과 적색을 주조로 한 오방색의 빛깔. 그는 기억과 일상과 상상을 하나하나의 개별적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대신 우주의 원동력이자 기(氣)라고 여기는 빛으로 환원시킨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질서 위에서 가능하다. 사물은 단지 그 질서 위에 잠시 모여든 단위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찰나에 사라질 현상적 사물들을 사진기에 담듯 화폭에 옮겨가는 노력의 허허로움이여. 예술이란 우주의 질서를 닮으려는 몸짓인가 보다. 색이란 본질로 통하는 가장 적합한 지름길이다."

30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인 대형작업 '빛 Light 02-35'는 비행기를 타고 북극을 지날 때 본 지평선의 신비함, 새벽이 오는 순간의 찰나적 감동을 표현한 것이다. 은은한 청색의 스프레이 효과, 미세하게 그어진 평행선의 반복, '화면에 진동과 에너지를 유도하기 위해' 물감을 머금은 실을 튕겨 흔적을 남기는 하씨 특유의 먹줄 작업으로 된 이 작품은 작가가 말하는 어떤 우주적 질서의 숭고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또 화면의 정중앙을 하얀 여백으로 남겨두고 바람개비처럼 빛의 파동이 각각 좌우 방향으로 돌아가는 가로 세로 2m의 정사각형 작품들인 '빛―청 Light―Blue'와 '빛―적 Light―Red'를 통해서는 동양적 음양사상을 드러낸다. 하씨는 1993년 산사에서 18일간 단식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이 오십줄에 들면서 그림은 고사하고 이래서는 삶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새벽 예불을 끝내고 나오면서 뒤통수로 기가 꽂히는 게 느껴졌다. 비로소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에게 빛의 공간은 종교적 명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회화 작품만을 선보이지만 하씨는 현대 판화를 본격 도입하고 가르친 사람이기도 하다. 79년 미국 템플대 타일러스쿨을 졸업하고 돌아와 성신여대에 국내 최초의 판화과를 창설해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85년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에 판화교실을 만들어 지금껏 강의하고 있다. 맨홀 뚜껑부터 오징어까지 그는 주변의 모든 사물을 탁본으로 만들어 새로운 형상과 의미를 부여해왔다. "예술작품이란 작가의 인식과 보는 이의 인식이 만나서 일치할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정신의 지대"라고 그는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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