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코미디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동시대의 삶을 반영해야 하지만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웃음을 전달해야 하며, 치고 빠지는 웃음과 가슴 한편을 서늘케 하는 페이소스도 있어야 한다. 경박한 웃음을 전달하다가도 예술가 같은 진중함도 잃지 않아야 한다.찰리 채플린(1889∼1977)의 대표작인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는 '위대한 코미디'가 어떤 것인가를 증명하는 영화. 1940년 발표한 그의 첫 유성 영화이기도 한 '위대한 독재자'가 디지털로 복원, 개봉된다. 60여년전 제작된 영화를 디지털로 복원하니 채플린의 콧수염 가닥이 하나 하나 보일 정도로 화면이 선명하고 음질이 좋다. 올 베를린 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됐고, 서울과 파리에서 먼저 개봉된다.
'위대한 독재자'는 판토마임처럼 느린 호흡의 코미디를 즐겼으나 슬랩 스틱에도 천재성을 발휘했던 채플린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다. 1차 대전 말, 토매니아국의 병사 찰리는 공군 장교 슐츠를 구한 뒤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전쟁에 대한 기억을 잃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이발소를 경영한다. 한편 새롭게 등장한 독재자 힌클은 토매니아를 장악하고, 유대인 탄압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힌클과 똑같게 생긴 찰리가 우연히 힌클로 오인되면서 생겨나는 소동이 영화의 주 줄거리.
찰리 채플린은 찰리와 힌클의 1인 2역을 통해 히틀러의 폭압과 유대인 학살을 묵인한 유럽까지 조롱한다. 힌클에 대한 묘사는 매우 신랄하다. 힌클은 큰 소리를 뻥뻥치는 독재자이지만 자신보다 힘있는 자 앞에서는 벌벌 떨며, 소심하고, 나약한 불완전한 내면의 인간. 상영금지 조치를 내린 뒤 국민들의 아우성에 결국 단 두 번만 상영하라고 지시했다는 히틀러는 이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위대한 코미디언은 위대한 무용수이자 음악가여야 함을 채플린을 증명한다. 힌클이 세계 제패의 몽상에 빠져 풍선 지구본을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은 러시아 발레리노 니진스키조차 "나의 발레와 견줄만 하다"고 했을 정도로 품격있고, 이발사 찰리가 헝가리 무곡에 맞춰 면도날을 가는 장면은 멋진 지휘장면처럼 리드미컬하다. 히틀러의 독일어 연설 장면을 흉내낸 대목 역시 압권이다. 히틀러의 독일어를 과장되게 재연했으나, 이 장면에 쓰인 언어는 에스페란토어. 히틀러를 짓밟으면서도 독일 국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노련한 배려다.
전쟁이 배경이니 전투와 폭파 장면이 많고, 찰리와 한나(폴레트 고다르)의 로맨스가 있으며, 몽상적 정치가에 대한 야유까지 담긴 채플린의 종합 선물 세트.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와 메가박스 2곳서 11월 1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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