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3국 정상회담은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이끌어 내려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압박이자 시위로 평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을 쥐고 있는 한·미·일 정상이 한 자리에서, 한 목소리로 '선(先) 핵 포기'를 요구한 사실은 북한에 버겁고 무겁게 다가갈 것이 분명하다.사실 공동발표문에는 북한을 압박하는 새로운 내용은 없다. 북한의 핵 폐기 촉구, 평화적 해결 등의 합의는 엄밀히 말하면 기존 원칙의 반복이다.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폐기하지 않을 경우 어떤 제재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는 한반도 정세를 극단적인 긴장국면으로 끌고 가지 않으려는 우리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당분간 북한의 자발적인 선택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회담 결과가 의미가 큰 것은 행간에 담겨진 메시지가 북한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경제제재, 무력 해결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핵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기회'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정치적 수사(修辭)이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당근'을 내비친 것이다.
반면 북한과의 수교 때 거액의 배상금을 내놓을 고이즈미 총리는 "핵 포기 없이는 수교도 없다"고 '채찍'을 들었다. 김 대통령은 평화적 해결을 말하면서도 핵 포기를 위한 3국 공조를 강조, 미국과 일본의 태도가 변할 때는 한국도 어쩔 수 없다는 사인을 보냈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얻을 것이 많다는 권유이자, 역으로 끝내 핵을 고집할 경우 제재, 나아가 극단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이다. 따라서 3국 정상은 선택의 공을 북한에 넘겼다고 볼 수 있다. 3국 정상이 제네바 합의의 존폐 문제나 '미국과의 불가침조약 체결' 제안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도 상황의 가변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는 북미 관계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회담 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북한과 협상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듯이 핵 포기 없이는 북미 관계의 진전은 불가능한 국면이다. 결국 북한의 선택에 따라 핵 사태가 북미간 일괄타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고, 위기로 가는 지옥문이 될 수도 있다.
/로스카보스=이영성기자 leeys@hk.co.kr
■ 공동발표문 요지
김대중 대통령, 조지 부시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무기 프로그램이 북미 기본합의문(AF), 핵 비확산 협약(NPT),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협정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반한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정상들은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신속하고 검증 가능한 방법에 따라 폐기하고 모든 국제적 의무를 완전히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정상들은 다음에 취할 조치와 관련하여 긴밀한 공조를 계속해 나가기로 합의하고 모든 관심국들과 함께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를 강조했다. 정상들은 여기에서 남북대화 및 북일 수교회담이 중요한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김 대통령은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핵 문제의 신속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핵 문제 및 납치문제를 포함한 안보문제에 관한 부분의 완전한 이행이 없이는 북일 수교회담이 완료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점과 북미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과감한 접근방법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정상들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의 폭을 넓히는 경우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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