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숲에서 주운 도토리를 다시 돌려주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도토리묵 좀 먹자고 욕심부리지 말고 숲 속 다람쥐나 청솔모에게 겨울 양식을 남겨주자는 것이지요.올해는 광릉의 숲이 도토리 때문에 유난히 소란스럽습니다. 몰래 숲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느라 직원들은 휴일도 반납할 정도입니다. 산길을 걸으며 이왕이면 진짜 도토리묵을 한번 먹어볼까 싶기도 하겠고, 더러는 많이 주워 용돈이라도 장만하고픈 생각이 들겠지요. 올해 도토리가 유난히 많이 열린 것도 사람들을 유혹하는 요인이겠죠. 외딴 산길을 걷다가 바닥에 쫙 깔린 도토리를 밟고 미끄러질 뻔한 일도 있습니다.
반대로 잣나무는 잣을 많이 달지 않아서 이를 거둬먹고 사는 사람들은 걱정입니다. 이 나무들은 모두 해거리를 합니다. 매년 일정한 양의 열매가 달리지 않고, 한해 혹은 그 이상 해를 걸러 열매가 많이 달리는 현상말입니다. 앞의 두 나무 말고도 대부분의 나무들에게서 이러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왜 해거리를 할까요? 우선 이용할 수 있는 양분의 양이 한정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나무에게서 가장 중요한 일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만드는 등 수많은 노력은 결국 튼튼한 열매를 만들어 후손을 잘 퍼뜨리려는 오직 한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는 한자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양분이 한정돼 있습니다. 한해 열매를 많이 만들고 나면 다시 영양분을 축적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해거리가 그 열매를 먹고사는 동물들의 수를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한 숲에서 한 종류의 나무들이 매년 일정한 열매를 맺는다면 그 열매를 식량으로 하는 동물들은 매년 그 열매를 모조리 먹어치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해 갑자기 많아지면 지금 있는 동물들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아 남는 씨앗들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말입니다. 생존전략입니다. 더욱이 이렇게 많이 열린 열매들로 동물들이 많아졌다가 그 다음해에 열매가 감소하면 굶어죽는 동물들이 생깁니다. 다음 해에 다시 많이 열려도 이를 먹을 수 있는 동물들의 수는 이미 줄어있는 것이지요.
참 대단한 나무들 아닙니까? 이 나무들이 요즘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우리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자못 궁금해집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ymlee99@foa.g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