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 대결양상이 심각하다. 문제는 그것이 이념이나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단순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벌이는 정파간의 대립이라는 점이다. 최악의 사태는 정치인들이 일으키는 성격 불명의 다툼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여러 가치들을 지레 포기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떨어지는 등 국민들이 온당한 정치 과정에 대해 무관심해져 가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우려할만한 사태다. 혹시 우리 정치인들은 그러한 상황이 더 심화하기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우리 정치인들은 현실의 급박한 문제를 헤쳐나갈 능력과 의지를 상실한 듯하다. 오직 차기 정권에 대한 관심과 줄서기에만 급급하다.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행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이 과거 우리 정치문화와는 달라야 한다. 지금은 '포스트 3김 정치'가 아니라 본격적인 21세기를 준비해야 할 막중한 정치권의 책무가 있다. 무조건 당선만이 살길이라는 듯, 도덕성을 상실한 권력 추구,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원칙 없는 이합집산의 정치는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국민들은 지금의 정치, 정치인, 정치문화에 식상해 있다. 어쩌면 정치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는 결코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스스로 판단의 준거(準據)로 삼아야 할 '생각의 중심'을 다른 부분과 구별해내야 하며, 그것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그저 자신을 세워줄 '표'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저열한 정치 계산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정치학자 케네스 볼딩(Kenneth E. Boulding)은 20세기가 21세기의 우리들에게 남긴 과제로 전쟁, 빈부격차, 환경, 그리고 도덕성 회복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앞의 세가지 문제와 함께 도덕성 문제를 거론한 것은 그의 탁견이 아닐 수 없다. 도덕성이란 다른 모든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전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정치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이 당에서 저 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적 도덕성의 회복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념도 정책도 도덕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이념이나 정책에는 반드시 공작(propaganda)이 도사리고 있어 그 폐해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한 국정난맥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이 나라의 모든 정치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생각의 중심'에는 도덕성이라는 지상의 가치가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국민은 지금 자신이 직접 뽑은 정치인들의 위선, 부패, 타락, 변절을 목격하며 냉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금 내일의 동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을 개탄한다. 정치가 대체 무엇인데 유권자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하는가. 혹자는 현재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 수준의 반영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유권자도 리더십과 도덕성을 상실한 정치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면에서 정치 행위자들의 후진적인 정치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도덕성을 회복한 정치는 거짓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도덕적인 정치인이라면 선동적인 언행을 자제할 것이다. 또한, 도덕적인 정치는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요, 궁극적으로 국민의 이익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거부할 수 있는 용기의 정치일 것이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들로 가득 차 있는 현실에 대한 심판권은 결국 유권자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21세기를 살아갈 이 모든 사회적 역량을 확인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손 풍 삼 순천향대 국제문화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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