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형(洪在馨) 국회 예결위원장이 21일 예결위 첫 회의에서 "시간이 없으니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할 때만 해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사도 "딴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본업인 예·결산 심의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기 국회 일정이 대폭 줄면서 예결위도 새해 예산안 종합·부별 심의가 지난해 7일에서 이번엔 4일로 주는 등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한결 값진 다짐들이었다.그러나 이런 공언(公言)은 첫날 회의가 북한 핵 파문 공방 등으로 난기류에 휩싸이더니 24일부터는 파행으로 치달아 나흘 만에 공언(空言)이 돼 버렸다. 더욱이 예결위의 파행은 3당 정책위의장과 정부측이 국회 의사당에서 초당적 경제 협력을 다짐한 불과 몇 시간후의 일이다. 예결위의 파행으로 25일 지난해 세입·세출 결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리지 못했고 새해 예산안 심의는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예결위의 파행은 "이 정부 각료는 김정일(金正日)이 임명했느냐"는 한나라당 백승홍(白承弘) 의원의 비난에 민주당이 발끈해 퇴장하면서 일어났다.
예결위 파행의 1차적 책임은 정치 논란에 힘을 실은 한나라당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대응 또한 "4,000억원 대북 지원설 등 한나라당의 공세를 넘기려는 시간 벌기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족하다.
예결위가 정상화해도 예산안 졸속 심의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각 상임위는 소관 부처 예산안을 처리, 정부안보다 총 4조원 이상 늘어난 안을 예결위에 넘겼다. 당초 예정한 4일간의 심의와 1주일 남짓한 계수조정 소위 가동으로는 180조원 규모의 예산안 심의는커녕 각 상임위가 늘려 놓은 예산안 조정도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27일까지 양당은 예결위 정상화를 위한 협상조차 외면해 국민의 한숨을 사고 있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동국 정치부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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