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폭탄을 두른 여자 요원이 내 이마에 총구를 겨누고 '우리는 죽으러 왔다. 너희도 모두 우리와 함께 알라의 곁으로 가자'고 위협했어요."러시아 모스크바 문화센터극장에서 발생한 인질 사건에서 살아남은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의 여기자 올가 체르냐크의 증언이다. 그는 인질 대부분이 극장 객석에 앉아 58시간 동안 물 몇 모금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며, 극장 무대 바닥을 폭탄으로 폭파시켜 만든 칸막이 없는 공동 화장실에서 인질범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해진 시간에만 용변을 봐야 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 인질들이 휴대폰을 통해 알린 극장 내부 상황은 26일 진압 작전 성공의 열쇠가 됐다. 인질범들은 체첸의 비극과 자신들이 평화적인 해결을 원한다는 것을 언론 등 외부에 알리기 위해 인질들의 휴대폰 사용을 통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이 점을 역이용해 인질범들의 숫자와 배치 상태, 취침 및 교대 시간, 무기 종류 등을 자세하게 파악했다. 인질의 가족에게 걸려온 전화를 FSB 요원이 받은 뒤 암호를 사용하면서 인질범들의 의심을 피했다. 세르게이 이그나첸코 FSB 대변인은 "이렇게 알아낸 정보가 워낙 정확해 인질범들이 모여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화학가스를 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27일 모스크바 메아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화학가스 투입 직전 인질 2명의 처형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여성 생존자인 나타샤는 "인질범들은 무대 위로 남녀 1명씩을 불러내자마자 총살했다. 특히 남자의 눈에 총을 대고 발사해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고 끔찍한 상황을 전했다. 이때 인질 중 일부는 기절했고, 몇 명은 극도로 겁에 질려 갑자기 일어나 인질범들을 밀치고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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