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선심성 법안이군." 국회의원들이 농어민 부채에 대한 이자를 대폭 감면해주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에 정부 고위 관계자는 냉소, 아니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맘 때 늘 그렇듯, 충분히 예상했다는 태도였다. 400만 농민을 등에 업은 법안이니 만큼 정부가 반대해도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는 말과 함께‥.정권 말기만 되면 늘 되풀이되는 공식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표심(票心)을 사기 위한 선심성 법안이나 정책들은 난무하는 반면, 집단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쟁점 현안은 철저히 외면 당한다는 것이다.
가스산업 구조개편 관련 법안의 국회통과가 사실상 무산됐다. 공식적인 이유는 "수송계약 승계 문제 등 세부 사안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굳이 노조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가 주택에 대한 양도세 중과 방침은 강행할 것"이라고 자신하던 전윤철(田允喆)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의 의지도 불과 며칠 만에 허언(虛言)으로 전락했다. 정부가 "고가 주택의 실수요자에게는 세금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정치권의 압력에 밀려 결국 양도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기 때문이다. 경제특구법, 기업연금제 등 여러 집단의 이해가 상충하는 핵심 법안은 표류하고 있지만, 농가 부채의 이자 감면이나 여성 생리대 부가세 면제 등 선심성 법안은 하루에도 서너 건씩 쏟아져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논란이 많은 법안을 충분히 더 검토하자는 것이나,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법안들은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하지만 다음 정권에 넘겨진 현안들은 원점부터 재검토되면서 비생산적인 논의가 되풀이돼야 하고, 남발되는 선심성 법안에 따른 부담은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떠안아야 할 몫이다. 이것이 정권 말기의 공식을 더 이상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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