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일본 근대미술 작품들이 광복이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중앙박물관은 29일∼12월 8일 '일본 근대미술 특별전'을 열고, 소장 일본 근대미술품 198점 중 일본화와 공예품 70여점을 선보인다.이들은 일제시대 조선 왕실이 1933년부터 사들여 광복 전까지 덕수궁 석조전에 전시했던 작품들이다. 작품 구입 자체가 일본 미술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일제의 강압에 따른 것이었다. 조선 왕실은 순종이 세운 창경궁박물관이 한·일합방 이후 이름을 바꾼 '이왕가(李王家) 미술관'을 통해 고려청자가 20원 가량 하던 시절에 점당 500∼3,500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고가로 작품을 사느라 예산을 탕진해야 했던 아픈 역사가 배어있다. 또 이번 전시에는 빠졌지만 태평양전쟁 등 침략 정책을 미화한 작품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일본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 총망라돼 있고 일본에도 없는 명작들이 많아 일본미술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콜렉션으로 평가된다. 도록 해설을 쓴 일본 공예전문가 다케우치 준이치(竹內順一) 도쿄예술대 미술관장은 "마치 타임캡슐을 연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일본에서는 이번 전시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회화로는 꿈 속의 정경을 보는 듯한 이른바 '몽롱체' 기법으로 근대 일본화에 새 바람을 일으킨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의 '정적(靜寂)', 서민생활을 담은 풍속화의 대가 가부라키 기요카타(鏑木淸方)의 '정어리', 미인화를 주로 그린 미키 스이잔(三木翠山)의 '꽃의 여행', 서양화법을 접목한 화조화로 이름을 날린 고다마 기보(兒玉希望)의 '가마우지' 등이 눈길을 끈다. 또 변관식(卞寬植)의 스승으로, 한국 근대미술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의 '명경지수(明鏡止水)'도 만날 수 있다. 공예품으로는 근대 도예의 선구자로 조선 백자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도미모토 겐키치(富本憲吉)의 '백자항아리', 칠기공예의 1인자인 마쓰다 곤로쿠(松田權六)의 '대나무 백로무늬 칠함' 등이 전시된다.
중앙박물관은 당초 지난해 10월 전시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악화하면서 차질을 빚었다. 김성구 미술부장은 "월드컵을 계기로 양국 문화교류가 활발해진 데 힘입어 전시를 열게 됐다"면서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역사에서 벗어나 일본 근대미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품을 대여해 내년 4∼6월 일본 도쿄와 교토에서도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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