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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외로움 달래줄 내 반쪽을 찾습니다"/50, 60대 재혼·만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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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외로움 달래줄 내 반쪽을 찾습니다"/50, 60대 재혼·만혼 증가

입력
2002.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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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간부인 김모(58)씨는 대학교수인 친구 박모(58)씨로부터 '가까운사람끼리 식사나 같이 하고 싶으니 꼭 참석해달라'는 내용의 초대장을 받고 고개를 갸웃했다. 상처한 지 10년째 되는 친구가 최근 10년 연하의 여성과 사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그게 결혼식 초청장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처럼 의아해하며 모인 친지들이 100여명. 호텔 연회장에서 진행된 결혼식은 주례없이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 퇴장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 나이든 신랑신부가 자신들보다 경륜이 많은 주례를 찾기도 마땅치 않았고, 두 사람 모두 사회생활을 통해 다져온 입지를 존중하며 평등하게 살자는 뜻에서다. 성혼선서는 하객들이 '결혼의 증인'이 됐다는 것으로, 양가 부모가 자르는 케이크는 가까운 친구들이 자르는 것으로 대신했다.결혼정보회사 선우가 매년 5월 실시하는 '효도미팅'을 통해 만난 염모(70)씨와 최모(66)씨도 교제한 지 2년만인 올 5월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1년 전부터 동거를 시작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최씨의 뜻에 따라서다. 얼굴은 주름으로 덮였지만 턱시도와 면사포를 쓴 두 사람은 하객으로 참석한 자녀와 손주 앞에서 쑥스러움과 함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의 며느리가 "사별한 뒤 10년 동안 혼자 힘으로 자녀를 키우느라 고생만 하신 어머님이 이제서야 좋은 분을 만나 행복을 찾게 됐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자 두 사람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50, 60대의 재혼·만혼이 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사별했다가 재혼하거나, 남자쪽은 재혼이지만 여자쪽은 만혼이 되는 커플도 많다. 평균수명의 증가는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혼자서 지내야 할 시간의 연장을 의미한다. 일과 자녀교육의 의무에서 해방돼,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시기인 만큼 취미와 생활을 같이 할 동반자의 존재가 절실한 시기이기도 하다. 핵가족화로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했던 예전과 달리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상황도 만혼을 원하는 이유다. 더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질 경우 돌봐줄 배우자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배우자가 있는 경우 더 건강하며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할 수 있다. 재혼으로 우울증을 치료한 경우도 있다.

'노혼'은 준비된 결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안정돼 있는데다 첫번째 결혼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결혼생활에서 오는 갈등을 지혜롭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50대 이후 독신자 가운데는 결혼이나 동거를 전제로 이성교제를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미팅을 주선하는 '상록문화교실'의 안성숙 실장은 "남자 쪽이 더 적극적"이라고 말한다. 지난 3월 시작한 '상록문화교실'은 현재 회원이 300명 가량. 매주 토요일 모임을 지속하면서 벌써 3쌍이 결혼에 성공했고 동거, 연애를 하고 있는 커플만도 대 여섯 커플에 이른다. 그는 "자녀 입장에서도 혼자가 된 부모를 돌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딸이나 며느리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스트레스나 푸세요'라며 모시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10월 초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주선한 실버미팅에는 남녀 50명 씩 참석해 19쌍이 연결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노혼이 모두 성공하는 것 만은 아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은 "성공하는 경우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하는 초혼과는 달리 만혼은 넘어야 할 장벽이 두배다. 무엇보다 가족, 특히 자식의 반대가 거세다.

자식이 반대하는 표면적 이유는 대부분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은 자식 된 도리가 아니다"라는 것. 그러나 부모의 결혼으로 자신들이 물려 받게 될 유산 몫이 줄어든다는 계산이 개입된 경우도 많다. 실제 경제력이 있는 부모가 재혼을 하는 경우, 유산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걸리게 된다. 정식으로 혼인을 하는 경우 혼인기간에 상관없이 배우자가 1.5를 상속하고 자녀들은 1씩을 받게 된다. 당연히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어렵게 일구어 놓은 재산을 엉뚱한 사람이 가로챈다'는 생각을 갖기 십상이다. 재혼을 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실혼 관계였다가 이혼을 하는 경우, 권리를 인정받지만 배우자가 사망하면 법정상속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정법률상담소에는 최근 재혼과 상속으로 인한 갈등으로 인한 상담이 늘어나고 있다. 박소현 상담위원은 "자녀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동거생활만 해온 경우, 한 쪽이 사망한 후 배우자의 생활을 어떤 식으로 보호해 줄 것인지, 미리 얘기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렵게 결혼식을 올리고도 2∼3년 만에 깨지는 경우도 많다. 박재간 소장은 "성공적인 노혼을 위해서는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며 "자녀에게 생계를 기대야 하는 형편이라면 결혼생활이 오래 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연금생활로 노후에도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는 노혼에 걸림돌이 많다는 말이다. 또 그는 "취미를 공유하거나, 나이 차가 너무 나지 않는 커플이 오래 지속된다"고 말한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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